강의교육

백대현, 나는 나다

백대현 2025. 4. 17. 18:17

나는 나다

※이 글은 오래전에 쓴 글로, 오늘 수업과 관련 있어서 올립니다. 생각이 달라도 재미로 보세요.

 

“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거나 생각하는 게 뭐야?”

 

(대답은 제가 멋대로 설정한 거고 오버한 면도 있으니 오해 마세요.)

 

A “예술!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내 몸과 혼을 전부 쏟아 부어 그린 한편의 그림. 한 10호 정도면 만족할 것 같아.”

 

B “니 멋대로 생각하세요. 나 아적 팔베게해주는 듬직한 남편 있고, 말 더 하라고? 만인이 날 너무 좋아해서, 너두지? 깔깔깔, 그렇다고 김자옥과는 아니야!”

 

C “당연히 내가 배 아파서 난 두 애들이지, 남편은 담이라고 말하면 남편이 좀 서운해 할까? 또 뭐가 있을까 친구들도.”

 

D “짜슥아, 뭐 있겠당께. 이 소주병 하나 팍 따서 마실 수 있는 자리와 옆에 가시나 하나만 있으면 된다. 아니 친구하나면 된다코카자.”

 

E “글쎄, 특별한 게 뭐 있겠니? 형제들이 많으니깐 모두 건강하구 잘 살면 되는 거지.”

 

F “별 싱겁긴, 나 지금 이만 원이 더 중요해. 뭐 골치 아프게 시리. 경기가 풀려서 DVD만 잘 나가면 된다.”

 

G “사는 것 자체래요. 부모님께 감사하구요.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살고 있더래요. 너희에게도 고맙게 생각하고 다 소중하더래요.”

 

H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무지 많다! 거 전, 대우 회장이 말 안했으면 내가 했을 텐데, 아까비, 나 인라인 타야 되고 낼 스키장 갈 건데. 니도 갈래?”

 

I “그게 말이지, 범위가 너무 넓다. 예를 들면 말이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건 머니라고 하면 좀 심하구. 거 머시냐.”

 

J “야! 난 좀 철학적인 질문엔 약해거든. 더 쉬운 질문 없니? 일단 거울이나 줘봐. 어디 보자. 어머머! 여기 기미하나 생겼네? 에잉, 어째.”

 

K “소중한 건 내 가족이죠.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 사실 소중한 게 너무 많아요. 이 세상엔.”

 

L “어이! 그런 거 생각할 시간 있으면 오늘 현장 가서 한탕 더 돌리겠네.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게. 다 좋은 게 좋은 거란 말도 있지 않은가? 비싼 밥 먹구 머리 쓰지 마라!”

 

M “앙? 일단 머리핀 하나 사주면 말할게. 사준 다구? 음, 갑자기 생각하니까 말하기 힘드네. 안되겠다. 드레스 한 벌도 아파트로 일단 보내. 그럼 생각해 볼란다. 앙?”

 

이젠 내 차례다. 나는 단호하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이 엠!”

성격 급한 사람들은, “아이엠이 뭐냐?” 라고 하겠지.

나는 ‘아이 엠 아이’ 다. 콩글리쉬로 번역하면 ‘나는 나다.’ 다. 즉, 내가 가장 소중하다는 것이다.

나를 아는 누군가는, “야아, 너 니 이쁜 아들이 아니야?”

또 누군가는, “하아, 그 자슥 엄청 썰렁하네 야 춥다 추워!”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사실이다. 난 나를 가장 아끼고 사랑하며 소중하게 여긴다. 그다음이 아들을 포함한 가족이고 형제, 친구 순서다.

내가 구태여 질문하고 답을 내리는 것은 우리 중에는 나보다 다른 것이나 다른 이를 먼저 생각하는 멋지고 훌륭한(?)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나 같은 부류의 사람을 개인적(個人的), 이기적(利己的) 등을 제시하며 손가락질 할 것이다. 하지만 나 자신이 소중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는 희생, 의무라는 이름으로 남에게 보이기 위한 페르소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보자,

‘내 부모가 병이 들어 호흡이 가빠진다.

내 자식이 배탈나서 설사한다.

내 친구가 하던 사업이 부도났다.

내 애인이 이별을 고하고 등을 보였다.’

기타 등등.

 

이 글을 쓰는 첫 번째 이유는,

나 자신이 가장 소중한 것을 알고 있으면서 나를 뒤에다 두고 다른 것에서 행복을 추구하려 하기 때문에 우리들에게는 욕심이 따르고 불행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다.

물론, 부모가 아프면 나도 아프다. 자식이 설사하면 나도 안타깝다. 친구가 부도를 내고 번뇌하면 함께 술잔을 부딪칠 수 있고, 연인이 떠나면 가슴이 무너진다.

그러나 본인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 아픔의 반은 가짜라는 것이다.

우린, 나를 낳아 주신 부모나 내가 난 자식이나 삶을 함께 하는 벗이나 사랑의 종점인 연인들도 내가 죽을 때 함께 동행(同行) 할 수 없으며 그들이 갈 때도 나도 같이 갈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나는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 같은 염세적(厭世的)인 사고방식주의자가 아니다. 다만 그의 주장 중 일부를 수용할 뿐이다. 

 

이젠 마무리로 들어가 보자.

나란 인간은 아이(I) 이지 아무것도 아니다. 부모, 자식, 친구, 연인은 유(YOU)다. 영어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 아이는 나밖에 없지만 유는 그 범위가 넓다. 서양인들이 합리성(合理性)을 최고로 내세우는 이유를 여기서 참고할 수 있다.

우리는 그런 착각 속에서 항상 머물러 있기 때문에, 나 아닌 다른 이에게 바라는 것이 많기 때문에, 혹은 온전히 대신해주지도 못하면서 척하는 것. 그런 우를 범하지 말자는 게 나의 두 번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