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잡문

환상(幻想) (1)

백대현 2015. 7. 16. 18:56

 

환상(幻想) (1)

 

 

 

“에이!! 밥값만 날렸네!...그럼 그렇지!...”

 

“뭔 소리냐? 뜬구름 없이?”

 

“그런 일이 있다. 말하기 싫다!!”

 

“웃긴 놈이네. 말이나 하지 말던지...”

 

“닌 뭘 그리 열심히 하냐?”

 

“야 바쁘다잉, 실없는 소리할라면 도와주기나 해? 참! 와이픈?”

 

“연락이 안 된다!!”

 

친구와 나눈 짧은 대화였다.

 

‘참! 와이픈?’이라는 질문에 친구는 찬바람나는 한마디로 나의 입을 막았다.

 

1년 전 친구의 아내는 우리가 말하는 소위 바람이 났다. 나는 그 친구 아내의 상대를 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볼 생각은 없다. 하지만 한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의 남성이라면 어쩌면 대단한 멋쟁이가 아닐까란 삐뚤어진(?) 생각도 해봤다. 물론 친구에게는 무척 미안한 마음이었지만...

 

친구가 옆에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독약을 깊이 들이마시며 막힌 하늘에 ‘후우...’ 하며 다시 내뱉었다.

 

‘가엾은 자식...얼마 전만 해도 젤 먼저 장가간다고 엄지손가락을 들이 되더만...’

 

초췌해진 친구는 무슨 생각에 잠겨있는 지 멍하니 바깥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 친구에게 나는 어떤 말을 그에게 해줄 수 있을 까를 고민해 봤다.

 

“A야, 너 환상이란 말 아니?”

 

“....??”

 

친구는 입술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내게 초점이 흐려진 슬픈 눈동자만을 보여주었다.

 

“환상(幻想)이란, ‘현실에는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상상하는 일’이다....어쩌면 망상(妄想)과 비슷한 면도 있지만 확연히 다르지...”

 

“얌마..그만해!! 너 또...포기하고 잊은 지 오래됐다!!”

 

포기란 말에 나는 약간의 안도를 했다. 포기처럼 편안하게 해주는 게 어디 있을까. 포기는 부정적 요소의 말이지만 생각하기에 따라 마음을 비운다는 긍정도 담겨 있다. 친구의 일이 일어났을 때 나는 포기하지 말고 찾으라고 하다가 나중엔 인정하라고 나의 생각을 번복해서 말해 주었었다.

 

“그래..잘했다...애 엄마에 대한 포기의 증거로? 그래서 오늘도 만나고 왔구나?...”

 

“그려. 근데 영 아니다!!...”

 

놀란 토기의 눈으로 물었다.

 

“아니라니? 뭔 소리야??”

 

 

“세살 어리다고 해서 혹시나 봤는데..퍽이다 퍽. 폭탄이라구 폭탄!!”

 

“폭탄? 하하, 처녀라구 했잔어?”

 

“긍께 하는 소리지? 애 셋 난 여자도 그 정돈 아니다.”

 

“결혼도 안한 여자도 퍽이 되는 가보구나? 그렇다고? 얘기도 안 해 보고??”

 

“그래!!”

 

“이 친구 보게, 아직도 외모보고 사람 보냐? 그 나인 지났잖아?”

 

“누가 뭐래? 왠만 하면...”

 

“...A야, 내가 결혼 할 때 어머니와 고모할머니가 유난히 심하게 반대하시더라. 난 어른들 말씀을‘제 인생 제가 알아서 해요.’ 라는 논리로 밀었지. 근데 그땐 몰랐는데 이젠 알 거 같애...”

 

“뭔 소리 할려고 그래?”

 

“아무튼 넌 아직도 환상 속에 그대를 찾고 있구나. 어쩌면 좀 더 헤매 일 필요가 있을 듯싶어...그땐 내 말이 생각 날거다.”

 

위에서도 얘기했다시피, 불혹지년(不惑之年)인데 그 자연의 섭리를 무시하고 겉을 향한 환상을 쫓는 이들에게 나의 말과 글이 작은 경고로 이어졌으면 한다.

우리 또래의 여인은 한창 때의 피부나 몸매가 자신의 지킴과 상관없이 변화하고 있다.

우리 또래의 남자도 시간(?)이 예전의 그 반으로 단축되어 가고 있음을 안다. 물론 상대적인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그 차이엔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소수의 우리 또래 중에는 위의 순리를 무시한 채 상대에게 기대치를 높이며 뭔가를 찾고 있는데 그것이 환상이다. 환상은 그나마 꿈과 애교를 담고 있다. 하지만 환상을 떠나 망상까지 진행되면 그것은 병이 된다. 매체를 통한 기사거리는 아마도 망상까지 간 정신병의 일종을 사회적인 문제로 삼기 위한 사회의 방어책이 아닐까? (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