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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교육

백대현, 문필(文筆)의 시작

by 백대현 2026. 3. 26.

 

문필(文筆)의 시작

 

 

 

   2026년 <마음의 소리> 정규 과정 명단을 받았다. 30대 3명, 40대 12명, 50대 4명, 60대 5명이다. 이번에는 20대가 한 명도 없다. 아마도 그들은, 글쓰기보다 더 중요하고 치열한 자리에서 자신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이해하면서도 아쉽다. 반면에 50~60대가 아홉 명이다. 수년째 해오면서 가장 많은 숫자다. 이 숫자는 하나의 질문으로 다가온다. 이 강좌에서 글을 쓰려면 나를 마주해야 한다. 오랜 시간 살아온 이들은 이미 자신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글쓰기 수업에 노크했다.

 

   윌리엄 진서는 『글쓰기 생각쓰기』에서 “글 쓰는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수많은 주제 가운데, 가장 잘 아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라고 했다. 이 말을 그대로 대입하면 어딘지 앞뒤가 맞지 않는 듯하다. 이미 자신을 잘 아는 사람들이라면 굳이 자기 이야기를 쓸 이유가 없다. 차원 높은 글을 쓰면 된다.

 

   그러나 나는 작가가 말한 의미 앞에 고개를 끄덕인다. 이 작가를 직접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그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 같다. 특히, 삶이 어느 정도를 지나 이제는 글로 자신을 정리해 보려는 이들에게 가장 익숙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쓰라고 권하는 대목에서는 묘한 울림이 남는다. <마음의 소리>에서 강조해 온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나 자신의 이야기’는 글쓰기의 출발점이자 넘어야 할 숙제다. 그런데도 나이가 많은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마지막까지 미루거나 감춘다. 타인의 시선에 맞춘 주제는 쉽게 다루면서도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한 줄의 문장조차 꺼내기 어려워한다. 잘 몰라서가 아니라 너무 잘 안다는 오해에서 생긴다.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기억, 아직 정리되지 않은 감정, 끝내 이해하지 못한 시간은 꺼내지 않으면 마음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가시와 상처는 시간에 비례해서 몇 배로 커지고 단단해진다. 그래서 ‘나를 쓴다’라는 일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큰 용기를 요구한다.

 

   자기만의 가치관이 어느 정도 정립된 사람들이 강좌의 방향과 목적에 어느 정도 맞을까 생각해 본다. 분명한 것은 하나다. 나를 쓰는 일은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어렵다. 나이와 상관없이 그 과정을 피하지 않고 지나갈 때만 더 나은 글의 세계가 열린다는 사실이다. 그 문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문필(文筆)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얼굴도 모르는 그들에게 미리 묻는다.

   “당신은 과연, 나 자신의 이야기를 쓸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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