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강의교육

백대현, 그 시절 단상

by 백대현 2026. 4. 30.

※ 이 글은 <마음의 소리> ‘터닝 포인트’ 관련 수업 때 등장하는 내용입니다.

 

그 시절 단상

 

 

칠흑 같은 밤이었다. 소년은 자신의 몸집만 한 보따리를 들고 아무 말 없이 어머니의 뒤를 따랐다. 어머니는 한 손으로 등에 업은 어린 남동생을 받치고, 다른 한 손으로는 여동생의 손목을 꼭 잡고 있었다. 소년은 그저 어머니의 등을 바라보며 한 걸음씩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그의 시골 생활은 그렇게 어둠 속에서 시작되었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소년의 삶을 단숨에 바꾸어 놓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출생신고조차 하지 못해, 그는 이름 없는 아이로 학교에 다녀야 했다. 선생님의 눈총과 친구들의 놀림은 어린 마음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웠고, 그로 인해 소년은 종종 열등감에 빠지곤 했다. 그런데 대부분 아이가 보자기로 가방을 대신하고 검정 고무신을 신던 시절, 도시에서 가져온 가방과 운동화는 소년에게 작은 위안이 되었다.

 

그가 살던 마을은 대대로 살아온 사람들이 모여 사는 전형적인 농촌이자 산촌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과 사춘기를 보낸 그곳은, 어느새 소년에게 고향과 다름없는 곳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쉽게 그곳에 스며들지 못했다. 또래보다 밝지 않았던 성격,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 늘 몸이 불편했던 어머니는 소년의 어깨 위에 조용한 무게로 내려앉아 있었다.

 

그 시절의 기억은 고통과 위로가 뒤섞인 채 남아 있다. 면사무소에서 배급받은 밀가루로 한 달 내내 수제비를 끓여 먹던 날들, 비 오는 운동장에서 뛰놀다 발뒤꿈치가 곪아 병원도 가지 못한 채 고통을 견디던 시간, 그러나 그 곁에는 늘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손자처럼 동생처럼 대해주던 친구의 할머니와 누나, 양아들처럼 품어주던 친구의 부모, 아픈 곳을 무료로 치료해 주었던 보건소에 근무하던 친구의 아버지, 그들은 소년의 어머니를 대신해 밥과 반찬을 챙겨 주었고, 삶의 온기를 나누어 주었다.

 

소년은 학교에서도 눈에 띄는 아이는 아니었다. 다만 그림 그리기를 유난히 좋아했다. 선생님의 칭찬은 그의 마음을 조금씩 밝히는 빛이 되었고, 그 덕분에 학교 대표로 백일장에 나가 상을 받기도 했다. 훗날 그림은 글로 바뀌어 그의 삶의 방향이 달라졌지만, 그 시절 그림을 그리던 시간은 여전히 한 폭의 풍경처럼 마음속에 남아 있다.

 

중학생 시절 역시 밝지만은 않았다. 사춘기 무렵 어머니의 재혼으로 새아버지가 생겼다. 그는 술과 노름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엿장수를 했는데 소년은 새벽과 밤을 가리지 않고 손수레를 밀어야 했다. 술과 노름으로 밤을 보내는 그의 모습은 소년의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었고, 그 영향인지 일찍부터 술과 담배, 심지어 오락조차 멀리하게 되었다. 그 태도는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중학교 2학년을 마칠 무렵, 당숙 할아버지가 소년을 서울로 전학시키기 위해 나섰다. 쉽지 않은 시기였지만 그분의 도움으로 전학은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소년은 다시 도시로 향하게 되었고, 한 시절은 마치 지워진 것처럼 그의 뒤로 멀어져 갔다. 그러나 정말로 지워진 것은 아니었다. 그 시절은 여전히 소년의 마음에 남아, 지금의 그를 이루는 한 조각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

 

백대현, 『세상과 하늘 사이』 본문 인용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