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쓰기는 고독에서 시작된다
“60대 여인이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마음의 소리> 수업 중반에 꼭 등장하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는 정답이 없다. 그래선지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답을 내놓는다. 예를 들면, ‘삶이 너무 힘들다. 지나온 삶을 떠올린다.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한다. 앞으로 남은 인생을 계획한다.’ 이 외에도 나이와 성별, 살아온 경험과 가치관에 따라 답은 모두 다르다.
이 질문의 목적은 정답을 찾는 데 있지 않다. 괴테가 말한 “영감은 오직 고독 속에서만 얻을 수 있다.”라는 문장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그의 말은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만이 영감을 얻는다는 뜻이 아니다. 혼자 있는 시간 속에서 자신과 깊은 대화를 나눌 때 새로운 생각이 싹튼다는 의미다.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영감이라는 단어가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특별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능력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영감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있던 생각이 어느 순간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기억과 감정이 글로 연결되는 순간이다.
수업 시간에, 고독과 외로움의 차이를 설명한다. 많은 사람이 두 단어를 비슷하게 생각하지만 다르다. 외로움은 소외와 결핍에서 비롯된다. 고독은 스스로 선택하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음속 무의식이 깨어난다. 이것이 영감이다. 글을 쓰려는 사람에게 고독의 시간이 중요한 이유다.
고독은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시간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수많은 정보를 접한다.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요구 속에서 살아가느라 정작 자신의 마음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놓치기 쉽다. 그러나 혼자 있는 시간은 외부의 소음을 차단하는 방음벽이 된다. 주변이 조용해질수록 내 안에 가라앉아 있던 진짜 생각과 감정이 모습을 드러낸다. 좋은 글은 그런 내면의 목소리에서 시작된다.
고독은 ‘무의식을 깨우는 시간이다.’
우리는 초와 분 단위로 쪼개어 사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정신없이 일과를 수행하느라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조차 놓칠 때가 많다. 긴 호흡으로 책을 읽고 사유하는 시간보다 짧은 영상과 빠른 자극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살펴볼 기회가 점점 줄어든다. 잠시라도 혼자 앉아 있는 시간은 다르다. 세상의 소리를 끄고 내 무의식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안에는 오래전 기억도 있고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감정도 있으며 아직 꺼내지 못한 이야기도 숨어있다.
고독은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시간이다.’
혼자 있을 때만이 어린 시절의 기억과 오늘의 사건이 만나고,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깨달음이 제대로 이어진다. 따로 떨어져 있던 삶의 조각들이 하나의 의미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성찰적 글쓰기는 그렇게 만들어진 생각을 언어로 옮기는 과정이다. 사유 없는 글은 단순한 정보 전달에 머물 뿐이고 독자에게 공감을 줄 수 없다.
고독은 ‘관찰의 힘을 길러 주는 시간이다.’
바쁘게 걷다 보면 길가에 핀 꽃은 보이지 않는다.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도 지나쳐 버린다. 그러나 혼자 조용히 걷는 날에는 어제 보지 못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바람의 냄새를 맡고 나뭇잎의 흔들림을 보며 저 사람들의 표정에도 관심이 생긴다. 평범한 일상에 감사함을 느끼고 새롭게 보이기 시작하면서 의미와 가치를 찾는다. 이것이 글감이다. 작가는 특별한 삶을 살아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게 바라보기 때문에 글을 쓴다.
고독은 ‘글 창고를 만드는 시간이다.’
좋은 생각은 생각보다 오래 머물지 않는다. 문득 떠오른 생각은 금세 사라진다. 그래서 기록이 중요하다. 하얀 종이를 앞에 두고 펜을 드는 순간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나만의 시간이다. 서툰 문장이어도 괜찮고, 완성되지 않은 생각이어도 괜찮다. 그렇게 적어 둔 한 줄 한 줄이 글이 된다. 다이어리, 블로그, SNS 등에 모아두면 후에 책이 된다.
괴테가 말한 영감은 번개보다 빠르게 스쳐 간다. 그 찰나에 붙잡지 못한 영감은 대부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적어도 키워드만이라도 기록해 두는 게 좋다. 그렇게 남겨 둔 작은 메모 하나가 어느 날 한 편의 글이 되고, 여러 편의 글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된다. 글쓰기가 노동에 비유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감은 순간적으로 찾아오지만, 그것을 작품으로 만드는 일은 꾸준한 수고가 필요하므로 누구나 할 수 없다.
그래서 어느 작가는 “글쓰기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다.”라고 했다. 글 쓰는 사람은 혼자서 백지와 마주하는 고독한 싸움을 하는 이들이다. 맞는 말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싫다면 글은 써지지 않는다. 고독을 피하려고만 한다면 영감은 스쳐 가는 공상으로 끝나고 만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 묻는다.
“60대 여인이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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