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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교육

백대현, 거절 못 하는 이유

by 백대현 2026. 5. 19.

거절 못 하는 이유

 

얼마 전, H고등학교에 제출할 서류 때문에 건강검진을 받았다. 공무원으로 채용되는 것도 아닌데 공무원 채용 신체검사서에 마약·대마 또는 향정신성의약품 중독 여부 검사, 잠복 결핵 감염 검진확인서까지 준비해야 했다. 그 전에도 몇 가지 서류를 제출했다. 절차가 번거롭게 느껴졌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책 출간 수업을 한다는 말에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선뜻 “오케이!”한 것을 후회했다. 무엇보다 최근 몸 상태가 예전 같지 않아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

 

검진 중, 간호사가 혈압 수치가 높다며 다시 측정하자고 했다. 두 번째 결과도 비슷했다. 몸이 쉽게 피로하고 머리가 무거웠던 이유가 어쩌면 혈압 때문인 것 같았다. 다행히 담당자는 운동 부족과 스트레스가 혈압에 큰 영향을 준 것 같다고 말했다. 

 

검진을 마친 뒤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저자와 약속한 최종 원고를 출력해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바로 전날 한 권의 작업이 끝났는데, 쉬어 갈 틈도 없이 또 다른 원고가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 앞에서는 “천직입니다!”라고 말하지만, 솔직히 책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고단하다.

 

책 한 권을 출판하려면 보통 두세 달이 걸린다. 판형과 관계없이 평균 원고량은 A4 기준 100~150쪽 정도다. 기성 작가는 세 번 정도의 교정·교열로 작업을 마친다. 그러나 처음 책을 내는 사람들은 다르다. 문장 하나에 오래 머문다. 세 번으로 끝나야 할 작업이 몇 번 반복되다 보니 예정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 어떤 날은 같은 페이지를 붙들고 몇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이번 H고등학교 프로젝트는 학생 14명과 교사 5명이 공저가 아닌 ‘자기만의 책’을 출간하는 과정이다. 아직 진행 중이라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다. 지금까지 학생들이 보여 준 태도와 원고는 놀라울 정도로 진지하다. 일천여 명 학생 중 단 14명이 참여한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 어쩌면 그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에 절차가 복잡하고 몸 상태가 좋지 않아도 이 일을 거절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부터 여든이 넘은 어르신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글쓰기와 출판 작업을 함께한다. 그래서 사람을 보면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게 생긴다. 50대 수강생이 힘들다고 하면 “60대, 70대 선생님들도 해내셨다.”라며 격려한다. 학생들에게는 “나중에 나이 들어 시작하면 더 힘드니 하고 싶을 때 해 보라.”고 말한다.

 

수업 시간에도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이겨 낸 선배의 사례를 들려준다. 지금은 웃으며 자신의 책을 자랑하는 그들도 수없이 흔들렸지만, 동료들의 격려와 배려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고 말해 준다. 사실 처음부터 “책을 내겠다. 작가가 되겠다.”라며 자신 있게 찾아오는 사람은 극히 소수다. 대부분 막연한 관심과 호기심으로 시작해서 글을 쓰면서 성장한 사람이 더 많다.

 

물론 책 한 권 냈다고 모두 훌륭한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능성은 분명히 커진다. 보통 작가들도 처음부터 특별했던 것은 아니다. 우연히 시작했고, 긴 시간 흔들리고 넘어지면서 결국 자기 자리를 만들어 냈다. 어느 날 갑자기 책을 내거나 작가가 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지난 토요일, 존경하는 선배 작가님을 만났다. 몇 주일을 미루다 시간을 맞췄다. 8년 만에 여섯 번째 책을 내겠다고 말씀하셨다. 선배님의 눈빛을 보며 여전히 글을 쓰고 책을 내려는 그 마음을 많은 후배가 꼭 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14명의 학생도, 5명의 교사도, 현재 함께 공부하는 선생님들도, 먼저 이 길을 넘어선 분들도, 여기서 들려줄 수 없지만, 선배님이 책을 내는 그 이유를 마음으로 듣고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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