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초등학교 시절, 백일장에 나갔다가 처음 본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글을 쓰고 있었다. 중학교에 진학한 뒤 그 아이는 도서관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아마 그 무렵부터였을 것이다. 나 역시 글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고등학교 때는 글쓰기 시간이 있었다. 소설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소설가라도 된 듯 원고지를 채웠다. 군 복무 시절에는 부대 신문에 내 글이 빠지지 않고 실렸다. 제대 후에는 한자 교재를 만드는 출판사에 입사했다.
돌이켜보면 글과 책은 늘 내 곁에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길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가끔 지인들이 묻는다. “어떻게 같은 일을 그렇게 오랫동안 할 수 있나요?” 이 질문에 답은 글쓰기 프로그램 <마음의 소리> 수업에서 종종 이야기한다. 물론 이것이 자랑거리는 아니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일도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도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이 질문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물음과 연결되어 있다.
한 가지 일을 꾸준히 밀고 나가는 삶과 상황에 따라 변화하며 살아가는 삶은 서로 다른 궤적을 그린다. 철학은 이 둘 가운데 어느 하나를 정답으로 선택하지 않는다. 존재의 안정성과 깊이를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삶의 역동성과 가능성을 실현할 것인가의 문제로 바라본다.
나는 전자에 가까운 사람이다. 한 가지 일을 지속하는 사람은 삶의 중심을 ‘지속성과 본질’에 둔다. 자신의 고유한 가능성을 깊이 파고들어 하나의 세계를 완성하려 한다. 니체는 정신의 발달 단계를 낙타, 사자, 아이로 설명했다. 그중 낙타는 자신에게 주어진 무거운 짐을 지고 사막을 건너는 존재로 비유한다. 한 가지 일을 꾸준히 수행하며 삶의 무게를 견디는 성실함은 단순한 인내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고 끝내 자기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한 준비 과정이다.
하이데거 역시 인간이 세계를 가장 깊이 이해하는 방식 가운데 하나로 ‘도구를 능숙하게 다루는 행위’를 들었다. 어떤 분야에 경지에 이른 사람은 지식을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전체로 구현한다. 장인이란 기술자가 아니라 진리를 삶으로 드러내는 사람이다. 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지닌 존재인 셈이다.
『중용』에는 ‘지성무식(至誠無息)’이라는 말이 나온다. 지극한 정성에는 쉼이 없다는 뜻이다.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며 꾸준히 나아가는 태도는 자연의 이치와 맞닿아 있다는 의미다.
반대로 여러 일을 경험하며 변화하는 사람들은 ‘생성과 유동성’을 삶의 원리로 삼는다. 그들은 고정된 정체성을 거부하고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장자는 이러한 삶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선과 악, 유용함과 무용함이라는 고정된 기준을 넘어 자유롭게 세상을 유영하는 삶, 즉 소요유(逍遙遊)를 최고의 경지로 보았다. 그의 말처럼 “쓸모없는 나무가 되어 천수를 누린다.”라는 것은 특정한 역할에 자신을 가두지 않는다는 뜻이다.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변하고 흐름에 몸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은 자연의 변화와 하나가 된다.
두 삶의 가장 큰 차이는 ‘나’를 바라보는 방식에 있다. 한 길을 걷는 사람은 자신의 본질을 찾아간다. 여러 길을 경험하는 사람은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철학은 둘 중 어느 쪽이 옳다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세상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서로 다른 답을 내놓을 뿐이다.
그렇다면, ‘글을 쓰는 사람은 어느 쪽이 더 나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정답은 없다. 중요한 것은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보다 그 선택이 자신의 의지에서 비롯되었는가?’이다.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과를 책임질 수 있다면 어느 길이든 다 의미가 있다.
나는 한 길을 오래 걷는 쪽에 가깝다. 글의 주제가 바깥보다 안쪽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의 변화보다 내면의 깊이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글을 쓰겠다고 나선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도 이것이다. “어떤 글을 쓸 것인가 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내가 어디에 서 있는가이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갈 것인가?”이다. 글은 자신이 선택한 삶의 방향에 따라 다르게 피어나는 하나의 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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