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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교육

백대현, 책이 나를 선택하는 순간

by 백대현 2026. 3. 14.

책이 나를 선택하는 순간

 

   병원 휴게실에서 멍하니 텔레비전을 바라본다. 이곳은 병문안을 온 사람들이 잠시 머무는 공간이다. 그러나 화면 속 출연자들은 환자 가족의 아픔과는 상관없이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박장대소하고 있다. 그 웃음소리는 어쩐지 이곳의 공기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시선을 돌리자, 텔레비전 옆 흰색 책장이 눈에 들어온다. 여러 종교 단체에서 두고 간 듯한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다. 사실 아까부터 여러 책 중 한 권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안경을 썼는데도 책 제목이 또렷이 보이지 않았다. 허리를 굽혀 천천히 책장 가까이 다가갔다. 자연스럽게 눈이 마주친 책에 손이 갔다.

 

   보통 사람은 이런 순간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읽을 책을 내가 선택했다.”

 

   아니다. 책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책이 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책은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 내가 다가가 집어 든 것처럼 보이지만, 그 책이 나를 그 자리로 불러 세웠다. 우리가 어떤 책을 만나게 되는 순간은 결국 그 사람의 현재 상태, 다시 말해 영혼의 높이와도 닿아 있기 때문이다.

 

   책은 도서관에 가든, 서점에 가든 입술을 꼭 다문 채 조용히 우리를 바라본다. 그리고 우리 각자의 취향과 마음의 상태를 살피다가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눈짓하고 손짓한다. 마치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던 만남처럼 말이다.

 

   휴게실 책장에 꽂힌 책들도 그런 기다림 속에 있는 것이다. 질병으로 지쳐 있는 사람들, 혹은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 언젠가 마음의 문을 조금 더 열게 되기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그들이 잠시라도 자신을 돌아보고, 삶을 다시 바라볼 수 있는 순간을 묵묵히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나 자신이 조금만 마음의 방향을 바꾸면 나는 누군가에게 위안이 된다. 조용히 책장에 서 있던 한 권의 책처럼 말이다. 어쩌면 모든 책은 이미 오래전부터 꼭 필요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책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에게 맘을 전하는 것이다.

 

   나도 너도 책이다. 책은 글이 있어야 한다. 글이 있어야 책이 된다. 수를 셀 수 없는 많은 책 중에 그 책이 내 눈과 맘에 들어왔다는 것은 결국 우연이 아닐 것이다. 책이 왜 나를 선택했는지는 그 책을 끝까지 읽어봐야 알게 된다.

 

   “책은 내가 선택하는 게 아니라 책이 나를 선택한 것이다.”

   

백대현의 『세상과 하늘 사이』 본문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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