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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교육

백대현, 불혹(不惑)은 서랍을 연다

by 백대현 2026. 4. 10.

불혹(不惑)은 서랍을 연다

 

사람은 어느 순간,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돌아본다. 앞만 보고 달리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자기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가?” 이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시기는 공자가 말한 사십 대를 지칭하는 불혹(不惑)이다. 불혹은, ‘세상이 어떤 유혹을 해와도 흔들리지 않는다.’라는 의미로 인간으로서 하나의 경계점이자, 삶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는 분기점이기도 하다.

 

불혹은 약관(弱冠)과 이립(而立)이 성인이 되면서 삶의 위치에 찾아가는 시기라면, 젊음으로 밀어붙이던 힘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 성찰(省察)이라는 새로운 리듬을 들이는 시기다.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인정하고 무엇을 이루었는가보다,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묻는 시기다.

 

사실 사십 정도 되면 이미 많은 것을 경험했다. 일과 인간관계, 성공과 실패, 선택과 후회를 겪으며 삶의 무게를 몸으로 익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경험들은 한데 모여 있지 않다. 기억은 흩어져 있고, 감정은 정리되지 않은 채 마음은 허하다. 마치 정리되지 않은 서랍처럼, 꺼내보지 않으면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다.

 

사십 대는 또 하나의 변화가 있다. 지난 시간 동안 삶의 중심이 타인에게 있었다면 중심이 내게로 이동한다. 가족과 직장을 위해, 사회 속 역할을 다하기 위해 애써온 시간 속에서 정작 ‘나’는 뒤로 밀려나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때 조용히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물음이다. 이 물음에 쉽게 답하지 못해 혼란스러워한다. 바쁘게 사느냐, 다른 사람을 배려하느냐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외면할 수도 없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여기서 글쓰기 필요성이 나온다.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생각을 기록하는 일이 아니다. 글을 써서 물질과 연결하기 위해 하는 행위도 아니다. 서랍 안에 흩어진 삶의 조각들을 하나씩 꺼내 이해되지 않았던 감정이 다른 관점으로 이해되면서 지나온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글쓰기 프로그램 <마음의 소리>가 첫날 첫 시간, 사십 대로 문을 여는 이유다. 이 시기의 사람들은 어느 정도 살아왔고, 동시에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지점에 서 있다. 이들은 글을 더 잘 쓰기 위해 배우는 게 아니다. 자신을 이해하고 자기 목소리를 듣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한다. 쓰기 시작하면서 남은 인생 방향을 모색하고 이를 통해 다음 문을 열 준비를 한다.

 

그래서 기본 과정에서는 대부분 글감이 자기 이야기다. 남에게 들려주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도 미처 알지 못했던 진짜 마음의 언어를 마주한다. 서툴고 아프지만, 분명히 자신을 향한 목소리다. 그렇게 한 문장, 한 문장 이어가다 보면 “넓게는 인간은 무엇이고 나는 누구이며 또 어떻게 남은 생을 살아야 하는가?”를 알아챈다. 그때가 되면, 글을 쓰지 않고는 살 수 없다고 마음이 먼저 말한다. 사십 대는 저무는 인생이 아니라 앞으로의 삶을 새롭게 설계하는 시기 또는 다시 태어나는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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