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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교육

백대현, 왜 수고를 사서 하는가

by 백대현 2026. 4. 19.

왜 수고를 사서 하는가

 
 
토요일 오전, <내가 쓰고 싶은 글로 미니 책 만들기> 수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 어린이가 수줍은 얼굴로 바닐라라테를 내밀었다. 순간 놀랐지만, 직감으로 물었다, “엄마 이름이 어떻게 되니?” 예상대로 함께 공부하는 분의 딸이었다. 그 마음이 전해져선지 힘이 났다. 덕분에 수업을 잘 마치고 돌아올 수 있었다.
 
전날에는 함께 공부했던 분들의 동아리에 참석했다. 인원이 많이 줄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심 걱정은 했지만, 기우였다. 결이 비슷한 사람들이 많아선지 들으면서 웃고, 말하면서 웃고, 그 웃음 속에서 오히려 내가 힘을 받아서 돌아왔다.
 
사무실에 돌아오자마자 고등학생들에게 글쓰기를 지도해 책까지 내는 장기 수업제안을 받았고, 책을 내고 싶다는 선생님의 문자를 받고 과정을 말씀드렸다.
 
3회차 수업에, 세 분이 몸이 좋지 않아 참석하지 못했다. 그중 한 분이 아쉬움을 전하는 문자를 보내왔다. 문자를 주고받는 중에, 내년에도 이 수업을 하느냐고 물었다. 글쟁이라 본능적으로 질문의 의도를 분석했다. 아마도 지금의 몸 상태로는 이어가기 어려워 내년으로 미루고 싶은 마음으로 읽혔다. 평소 같으면 “당연하죠!”라고 가볍게 답했을 질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저도 몸이 예전 같지 않아 장담할 수 없습니다.”라고 답을 보냈다.
 
분주하게 한 주를 보내고 맞이하는 토요일은 주로 내 시간을 갖는 편이다. 쏜살같이 지나간 한주의 피로를 털어 내고 충전하는 시간, 늘 그랬듯 바다로 향할까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나는 왜 수고를 사서 하는가?” 그 질문은 삼십여 년 전으로 내 몸을 이동시켰다.
 
***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가진 지식과 지혜를 드러내고 싶어 한다. 알고 있는 것은 말하고 싶고, 보이는 것은 지적하고 싶고, 옳다고 믿는 것은 끝까지 밝히고 싶어진다. 그러나 옛 성인들은 그런 충동이 일어나면 잠시 멈추고 사색하라 했다.
 
노자는 공자에게, “총명하고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죽음의 위험에 가까워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자신이 남보다 낫다고 여길수록, 남을 자주 비판하게 되기 때문이다. 박식함과 말솜씨로 타인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드러내지만, 그것은 다시 자신을 향해 돌아오는 부메랑이 된다. 화를 불러들이는 셈이다.
 
그는 또 군자에 대해, “군자는 내면에 훌륭한 재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어리숙해 보이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 말은 겸손을 넘어선다. 자신의 주장을 앞세우지 않을 때 인정받고, 공을 내세우지 않을 때 존경받는다는 역설을 품고 있다. 드러냄이 아닌 감춤, 과시가 아닌 절제 속에서 사람의 깊이가 드러난다는 뜻일 것이다.
 
청년 시절, 한자 교재를 만드는 출판사에 다녔다. 자연스럽게 동양 고전을 접했다. 그때 마음에 담은 핵심 가치는 ‘정(正)’과 ‘인(仁)’이었다. 그래서 운영하는 출판사 상호도 ‘정’이라 정했고 참고 인내하는 것을 삶의 철학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
 
그러나 진리로만 알았던 그들의 가르침은 서양 사상을 만나면서 그 가치들은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동양 사상과 서양 사상의 충돌이라고 이해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두 사상의 중심에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깨달음을 실천하기 위해 ‘사랑하면서’라는 모토(motto)를 내세웠고, 그중의 하나가 <마음의 소리>다.
 
이 모토는 멈춤이 아니라 움직임을 요구한다. 오랜 시간 겸손이라는 이름으로 잠들어 있던 의식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재능을 땅속에 숨기는 것이 겸손이 아니라, 나누는 자세가 겸손임을 알게 되었다. ‘교학상장(敎學相長)’과 ‘서로 사랑하라’도 같은 의미이다. 그래서 “나는 왜 수고를 사서 하는가?”라는 물음은 고민이 아니라, 이미 내 마음에 자리 잡은 답이다.
 
백대현, 『하늘의 것 땅의 것』 본문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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