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를 통과해 미래를 연 사람들
누군가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글쓰기를 하는데 굳이 과거를 들춰낼 필요가 있느냐, 지금도 쓸 것은 충분한데, 잊고 싶은 이야기까지 꺼내야 하느냐?”
그 말에는 불편함과 솔직함이 함께 담겨 있었다. 우리는 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배워왔고, 지나간 일은 묻어두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사실 과거를 꺼내는 일은 이미 아문 상처를 다시 건드리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질문을 했던 사람이 몇 차례 수업이 지난 뒤 말했다.
“이제야 그 이유를 알겠네요. 예전에 했던 말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짧은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변화가 담겨 있었다. 과거가 단순히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지금의 자신을 이루는 뿌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글쓰기 프로그램 <마음의 소리> 초반은 마음속에 묻혀 있는 씨(알)를 꺼내는 시간이다. 그 씨는 기쁨일 수도 있고,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슬픔일 수도 있으며, 오랫동안 외면해 온 기억일 수도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누구나 망설인다. 굳이 꺼내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은 감정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정말 쓰고 싶은 문장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과거를 돌아본다는 것은 기억을 나열하는 일이 아니다. 해석의 과정이다. 그때의 일이 지금의 나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지를 묻는 일이다. 그 질문을 피하지 않고 따라가다 보면, 흐릿했던 감정은 선명해지고, 설명할 수 없던 기억들은 하나의 문장으로 이어진다. 그 순간,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은 빠르지 않다. 좋은 글을 빨리 쓰고 싶은 마음으로는 오래 견디기 어렵다. 눈에 보이는 성과도 더디고, 때로는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과정을 거치지 않은 글은 가볍다. 순간적으로 눈길을 끌 수는 있어도 오래 남지 못한다. 반대로 자신의 과거를 통과해 나온 문장은 서툴더라도 묘한 힘을 지닌다.
그래서 글쓰기에서 과거를 전제로 한 성찰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 가깝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지금의 마음을 정확히 바라보게 되고,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하는지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이전에는 써본 적 없는 문장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마치 오래 기다렸다는 듯, 문학이라는 세계가 조용히 다가오는 순간이다.
오늘, 그 시간을 견뎌낸 사람들이 미래 앞에 섰다. 반 년 가까운 시간 동안 스무 번의 수업을 이어가며, 각자의 삶 속에서 자신을 들여다보았고, 그 기록을 한 권의 결과물로 묶어 세상에 내놓았다. 서로 모여 서로의 글을 읽으며 버티었고, 다시 써 내려가기를 반복한 시간도 있었다. 이제 그들은 글쓰기를 배우는 사람이 아니다. 사는 동안 자신의 글을 써가며 미래를 열어 갈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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