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쓰고 싶은 글(책)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글 쓰는 사람은 누구나 ‘쓰고 싶은 글’이 있다. 마음속에는 꼭 내고 싶은 책 한 권쯤 품고 살아간다. 살아오는 동안의 상처와 사유의 기록일 수도 있고 세상에 던지고 싶은 이야기일 수도 있으며 문학의 한 장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글쓰기의 세계는 갈망(渴望)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쓰고 싶은 마음과 실제로 끝까지 써낼 수 있는 역량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거리가 있다.
그 틈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사람으로서, 글쓰기 프로그램 <마음의 소리>에 오는 분들에게 이런 말을 꼭 던진다.
“당신들은 글을 못 쓰는 사람이 아닙니다. 쓸 능력이 있지만, 사정상 잠시 멈췄던 사람들입니다. 물론 개중에는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대로 쓰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다만 이곳에 온 순간만큼은 학습자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만의 글쓰기 방식과 경험, 실력은 잠시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과정에서 내적 충돌이 생기고, 지속 여부도 고민하게 됩니다.”
이 말 속에는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는 쓰고 싶은 글보다 쓸 수 있는 글을 써야 한다.”라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글을 긴 시간 동안 써온 사람일수록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의 방향이 분명하다. 마음속에는 써보고 싶은 주제, 문체, 구성 방식 등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배움의 과정에서는 잠시 그것을 내려놓고, 자신의 역량을 살펴보고 책임질 수 있는 글부터 써야 한다. 그것이 더 멀리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쓰고 싶은 글은 열망이다. 이상이고 꿈이다. 아직 충분히 소화하지 못한 인간과 세계에 대한 동경이기도 하다. 반면 쓸 수 있는 글은 현재의 나를 기반으로 한다. 지금의 경험과 사유, 삶의 깊이 안에서 감당할 수 있는 이야기다.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언어야 하며, 실제로 완성할 수 있는 글이어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글감이 있어도 현재의 역량이 받쳐주지 못하면 결국 미완성으로 남는다. 처음에는 거창하게 시작하지만, 중간에 길을 잃고 멈춰버리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나 나를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글은 다르다. 분량과 상관없이 끝까지 써낼 수 있고, 완성의 경험을 통해 다음 단계로 나아갈 힘을 얻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완성’이다. 글쓰기는 낭만 이전에 노동이다. 한 권의 책을 끝까지 책임지는 일은 엄청난 집중력과 에너지를 요구한다. 쓰고 싶은 마음만 앞세워 무턱대고 달려들면 쉽게 지치고 방향을 잃는다. 하지만 자신의 경험과 사유의 크기에 맞는 글을 쓰면 완성의 경험을 얻게 되고, 그 경험은 작가로서 자부심이 된다. 한 번 끝까지 써본 사람은 다음 글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달라진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다. 쓰고 싶은 글은 개인적 욕망이나 능력에 벗어나서 오히려 독자의 입맛에 맞는 글을 쓸 확률이 높아진다. 하지만 내가 쓸 수 있는 글은 나의 글을 통해 사회와 독자에게 실제로 건넬 수 있는 확실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예를 들면 나의 성격과 성향, 내가 살아온 삶의 여정,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시선, 그리고 타인 이해, 이후에 써야 독자와 연결되는 글이 나온다.
사실 좋은 글은 거창한 이야기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내가 선 위치와 역할에서 가장 진실하게 써낼 수 있는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작은 완성이 쌓여 정말 쓰고 싶었던 글(책)로 나간다. 세상 모든 일에 기본이 중요한 것처럼 문학을 중심으로 한 예술의 세계는 특히 더 그렇다.
이번 공저에 참여한 일곱 명의 작가들은 그 의미를 깨달았기 때문에 작은 시작을 선택했다.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나만의 이야기로 출발을 알린 것이다. 이들은 이번 걸음을 기회로 정말 쓰고 싶은 글(책)을 향해 정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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