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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교육

백대현, 누군가의 1%가 된다는 것

by 백대현 2026. 5. 18.

누군가의 1%가 된다는 것

 

 

지난주 월요일부터 오늘까지 많은 선물과 식사를 대접받았다. 나는 원래 받는 일을 어색해하는 사람이다. 반면 주는 것은 좋아한다. A 선생님은 선물을 줄 때마다 늘 신신당부한다.

 

“남 주지 말고 꼭 선생님이 가져가세요.”

 

실제로 받은 물건을 아무렇지 않게 다른 사람에게 건네곤 했다. 한번은 준 사람 앞에서 다른 이에게 줬다가 난처해진 적도 있었다. 그만큼 나는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에 더 가까운 사람이다.

 

그런데 요즘 달라졌다. 이제는 받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사무실을 둘러봐도 그렇다. 꽃송이가 색깔별로 꽂혀 있고, 여기저기 선물이 쌓여 있다. 핸드폰 안에도 아직 쓰지 못한 디지털 선물이 열댓 개나 들어 있다. 예전 같으면 민망해서 손사래부터 쳤겠지만, 이제는 웃으며 받는다.

 

이런 생각도 한다. ‘내가 이렇게 얼굴이 두꺼운 사람이었나?’, ‘그래, 이 정도는 받아도 되지 않을까?’ 심지어 수업 시간에, “저 이 커피 좋아합니다.”라고 농담처럼 말하기도 한다. 그러면 어떤 선생님은 다음 시간에 정말 커피를 사 들고 온다.

 

사무실에 온 사람들은 꽃과 선물, 롤링 페이퍼, 감사패를 보며 눈빛으로 묻는다. “이게 다 뭡니까?” 그럴 때마다 들뜬 목소리로 하나하나 설명한다. 신기한 것은 사람들의 반응이다. 시기하기보다 부러워한다는 점이다. 또 있다. 가장 좋아하는 선물은 따로 있다. 나를 향해 부르는 호칭이다. “선생님, 스승님, 사부님.”이다.

 

이런 호칭을 들을 때면 기분이 더 좋아진다. 아마 조선 시대에 태어났다면 서당 훈장이 되었을 사람이다. 회초리를 들고 아이들을 앉혀 놓고 무언가를 가르치며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내 안에는 꼰대(?) 기질이 꽤 남아 있다.

 

신기한 것은, 학창 시절에는 발표 한번 제대로 못 하던 사람이었다. 손드는 것조차 두려워했고,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은 긴장했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들 앞에서 거리낌 없이 말한다. 때로는 오해받을 수도 있는 이야기까지 서슴없이 꺼낸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바꾸었을까? 글쓰기였다. 처음에는 취미처럼 시작한 글이었다. 어느 순간, 글이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평생 감추고 살아온 그림자와 상처를 글로 꺼내 놓기 시작하자 빛과 별이 보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글을 읽으며 자기 어둠을 견딜 힘을 얻는다고 했다.

 

나는 책과 글 속에서 살아온 시간을 나누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후배들이 변해 가는 모습도 보았다. 때로는 비슷한 결의 사람들을 작가의 세계로, 거의 반강제로 끌어들이기도 했다. 물론 그들의 삶을 바꾼 것이 온전히 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관여한 몫은 1%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있다. 사람은 자기 인생에 단 1%라도 도움을 준 사람을 기억한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성장에는 언제나 먼저 걸어간 사람이 있다. 나 역시 누군가의 가르침과 관심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지금 내 곁의 후배들도 언젠가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을 건네게 될 것이다. 그것이 인간이 사는 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두 선생님과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분들이 “선생님은 받을 만합니다.”라고 말해 주었다. 그 말 때문이었는지 밥은 반 공기밖에 먹지 않았는데도 배가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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