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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교육

백대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by 백대현 2026. 6. 8.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졸병 시절, 점호 시간에 얼차려를 받은 적이 있다. 이유는 단순했다.

 

“빠졌다!”

 

군인에게 점호 시간은 이것저것 검사를 받는 시간이다.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다. 그런데 상관은 내가 웃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웃지 않았다. 원래 표정이 밝은 편이었을 뿐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웃는 얼굴은 조금씩 사라지고 주름과 함께 찌들어 가고 있다. 사람들 앞에서 크게 웃는 일도 드물어졌다. 사진을 찍을 때도, 재미있는 일이 있어도 표정은 늘 비슷하다. 어느새 진지한 얼굴은 돌덩이처럼 굳어 버렸다.

 

급한 일을 마치고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길 건너 공원을 천천히 걸었다. 사흘 동안 중요한 행사를 치른 탓인지 몸의 기운이 모두 빠져나간 듯했다. 저녁 공기로 다시 채우고 싶었다.

 

요즘은 “피곤하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사실 정말 그렇다. 그래서 공원 길을 걸으며 마음에 내려앉은 먼지 같은 피로를 털어내고 싶었다. 이 방법은 생각보다 효과가 좋다. 산책하다 보면,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기도 하고, 때로는 아무 의미 없는 상상 속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그렇게 천천히 시간을 흘려보내야 하루의 긴장과 감정이 조금씩 가라앉는다. 그러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어김없이 꼬리를 문다. 어쩌면 나는 감정의 여운이 긴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문득 지나간 시간과 짧은 인연들이 떠올랐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일을 핑계로 몇만 원을 속여 가져간 사람이 있었다. 방세를 내지 못해 쫓겨날 처지라고 해서 선불로 주었던 것이다. 갈 곳이 없어 사무실 창고에서 잠을 청하던 사람, 젊은 나이에 빚에 눌려 라면과 빵으로 끼니를 때우던 사람, 허황된 말만 반복하며 현실과 동떨어진 삶을 사는 사람, 사이비 종교에 빠져 삶의 중심을 잃어버린 사람, 어떤 이는 가족 모두가 질병과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고 했다.

 

그들은 모두 내 삶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흔들렸다. 때로는 열을 올리며 무엇이 옳은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야기해 주기도 했다. 왜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지, 무엇을 붙잡고 살아야 하는지 마치 내 일처럼 말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어쩌면 그들을 향한 말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오랜만에 피로를 풀기 위해 나왔다가 그 질문의 끝을 붙잡았다. 바람을 벗 삼고, 이름 모를 잡풀들을 바라보며 어둑해지는 공원 길을 계속 걸었다. 세상은 여전히 복잡하고 사람들의 삶은 저마다의 사연으로 흔들린다. 하지만 그렇게 걷는 시간 속에서만큼은, 나 역시 조금씩 내 마음의 방향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생각 끝에는 늘 사람이 남는다. 요즘 후배들이 그렇다. 유쾌한 농담을 던지고, 밝은 기운으로 주변을 환하게 만드는 후배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웃고 있다. 혼자 피식 웃는 날이 많아졌다.

 

생각해 보면 삶은 거창한 답으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 주는 사람들 덕분에 견뎌지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세상이 팍팍해도 곁에 웃음을 건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그래서인지 점호 시간에 웃는다고 얼차려를 받던 그 순수한 얼굴이, 다행스럽게도 세월 속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고, 어쩌면 잊고 지냈던 밝은 표정을 조금이나마 되찾으라고 하늘이 보냈다는 생각으로 오늘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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