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글쓰기는 내가 선택해서 시작한 일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내 삶에서 기다리고 있던 하나의 계획된 순서다.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설명하기 어려운 흔들림을 만난다. 이유 없이 마음이 허전하고, 사람들 속에 있어도 혼자인 듯하며, 분명 살아가고 있는데 삶의 의미가 조금씩 멀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문득 창밖을 바라보다가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라는 생각이 스치고, 불현듯 사는 재미가 사라진 것처럼 마음이 막막해진다. 누구에게도 쉽게 말할 수 없는 그 낯선 감정 앞에서 조용히 눈을 감는다. 바로 그 순간, 글이 다가온다.
인간은 저마다 다른 사연을 품고 살아간다. 설명되지 않는 상처와 외로움, 공허함을 안고 살아간다. 그 마음을 달래기 위해 여러 길을 찾아 나선다. 어떤 이는 여행을 떠나고, 어떤 이는 음악과 미술을 시작한다, 이때 어떤 이는 글을 쓰고 싶어진다. 특히 글쓰기는 내가 찾은 행위라기보다 오래전부터 존재해 온 어떤 길 위에 내 걸음이 도착한 것에 가깝다. 삶이 어느 지점에 이르렀을 때 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글쓰기는 누구에게나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준비되지 않은 마음이나 성공과 물질만을 위해 다가가면 글은 살아 있는 존재처럼 조금씩 멀어진다. 바쁘다는 이유를 만들고 재능이 없다는 생각을 심어주며 먹고사는 현실을 먼저 내세우게 만든다. 자신이 없다는 두려움도 슬그머니 마음속에 자리 잡는다. 몇 번의 시도 끝에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역시 내 길은 아닌가 보다.” 그렇게 펜을 놓고, 글과 인연이 없었던 때로 돌아간다.
이는 글이 그 사람을 떠난 것이 아니다. 아직 글쟁이로 살아갈 시간이 더 필요하거나,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다. 시간이 흐른 뒤 그 사람은 다시 글 앞에 선다. 포기하려 해도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자꾸 글을 향해 걸어가게 한다. 그때 글쓰기는 단순한 노력이나 기술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의 능력만 믿고 쓰는 글은 바람 앞의 촛불과 같다. 잠시 밝게 타오를 수는 있어도 작은 흔들림에도 쉽게 꺼진다. 처음에는 열정으로 시작해도 시간이 지나면 마음은 식고, 미루고 또 미루다가 아예 사라진다. 자기 과시를 위해 쓴 글은 안개처럼 흩어진다. 사람의 시선을 잠깐 붙잡을 수는 있어도 마음속에는 오래 남지 못한다.
그래서 글쓰기를 오래 이어가려면 의식의 흐름이 달라져야 한다. 글은 내 삶과 함께 걸을 때만 살아남는다. 제대로 된 글쓰기는 삶과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살아가는 동안 겪는 기쁨과 상처, 사랑과 이별, 기다림과 외로움은 글이 되어 흘러나온다. 글과 친구가 되어 동행해야 한다. 글은 나를 위로하고 치유하며 관계하는 이들과 이어 주는 보이지 않는 다리가 된다. 그 사이를 흐르는 따뜻한 통로가 된다. 오래 살아남는 글은 잘 쓴 글이 아니라 진심을 담아낸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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