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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교육

백대현, 조회 수에 담긴 내 철학

by 백대현 2026. 7. 3.

조회 수에 담긴 내 철학

 

 

나는 오리지널 아날로그 세대다. 일상에서도 이른바 ‘꼰대 기질’이 제법 있는 편이다. 그런 내가 6년 전, 후배의 소개로 한 사람을 만나 단체를 운영하며 영상 제작 프로그램을 배우게 됐다. 블로그 외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지만, 수업 시간에 영상을 만들었고 그 결과물을 유튜브에 올리는 법까지 익혔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수업이 끝나자, 내 채널은 그대로 방치됐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이 보여준 한 편의 노래 영상은 꽤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뒤 며칠이 지나지 않아 몰입하기 시작했다. 마치 손바닥만 한 어항 속을 맴돌던 붕어가 넓은 수족관으로 옮겨져 날개라도 단 것처럼, 시간만 나면 내 글로 노래를 만들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지난 시간 동안 겨우 두 자릿수 조회 수에 있던 내 채널이, 불과 일주일 만에 조회 수 1만 2천을 넘었다는 사실이다.

 

꾸준함이 장점인 내게 이 변화는, 허투루 보내는 시간을 채울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런데 그 기쁨은 기쁨으로만 머물지 않았다. 또 하나의 습관, 곧 무엇이든 의미를 따져 보는 성향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나는, ‘왜 사람들은 이토록 조회 수와 구독자 수에 마음을 빼앗길까? 나 역시 왜 그 숫자를 자꾸 확인하고 있을까?’라는 질문 앞에 섰다.

 

현대인이 SNS의 조회 수와 구독자 수에 몰입하는 현상은 가벼운 유행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존재론적 열망과 결핍을 드러내는 흥미로운 현상에 가깝다. 이 문제를 이해하는 데는 헤겔과 사르트르의 서로 다른 메시지를 참고할 만하다.

 

헤겔은 인간이 자아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봤다. 인간은 혼자서 자신을 완성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통해, 반응을 통해, ‘나는 어떤 존재인가’를 확인해 간다. 과거에는 이런 인정 구조가 계급이나 직업, 가문 같은 비교적 제한된 틀 안에서 이루어졌다면, 오늘날은 개인의 스펙을 넘어 SNS라는 디지털 무대로 확장해 놓았다. 이제 ‘좋아요’, ‘구독자’, ‘조회 수’는 내가 타인에게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직관적이고도 즉각적인 지표가 되었다. 이 숫자들은 나는 여기 존재하고 있다. 나는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타인의 반응을 통해 확인받고 싶어 하는 인간의 오래된 욕망을 드러낸다.

 

반면 사르트르는 전혀 다른 경고를 보낸다. 그의 유명한 말,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단순히 타인을 싫어하라는 뜻이 아니다. 다른 이의 시선을 의식하는 순간,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관찰되고 평가되는 객체로 전락할 위험에 놓인다는 뜻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SNS는 위험한 공간이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에서 어느 순간 나의 정체성과 무관하게 구독자 수와 조회 수에 반응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타인의 취향과 입맛에 맞는 모습으로 자신을 편집한다. ‘진짜 나’가 아니라 ‘보여주기 위해 가공된 나’가 앞에 서게 되는 것이다.

 

두 주장을 보면, 나는 오랫동안 사르트르 쪽에 더 가까운 사람이었다. 숫자에 집착할수록 ‘진짜 나’로서 존재하기보다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나’만 남게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외부의 평가보다 내면을 가꾸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겨 왔다. 모니터와 휴대전화 속에 떠 있는 가상의 숫자를 실제 삶의 가치보다 더 무겁게 여기는 태도를 경계해 온 사람 중 하나이기도 하다. 본질은 사라지고 껍데기가 본질을 압도하는 상황을 늘 불편하게 바라본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 내가 요즘 조회 수에 재미를 느끼고 있다. 영상이 올라간 뒤 반응이 어떤지 궁금해 수시로 숫자를 확인하고, 조금이라도 수치가 오르면 은근한 만족감도 느낀다. 스스로 생각해도 낯설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정체성 혼란일지 모른다. 나는 그동안 타인의 눈을 통해 존재를 증명받고 싶어 하는 욕망으로부터 꽤 자유롭다고 믿어 왔다. 불과 보름 만에 그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 물론 이 짧은 변화만으로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 역시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에서 완전히 벗어난 존재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 이론을 떠올려 보면, 인간은 생존의 욕구를 넘어 관계를 원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며, 자아실현을 향해 나아간다. 그런 점에서 지금 내가 느끼는 이 미묘한 설렘과 동요 역시 어쩌면 자연스러운 과정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내 창작물이 닿고, 그 반응이 숫자로 확인될 때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숫자 자체를 삶의 목표로 삼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조회 수 그 자체가 아니다. 그 숫자에 매달려 나를 포장하는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 새로운 경험을 통해 조금 더 부지런해지고, 조금 더 배우고, 조금 더 성장하는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다. 타인의 클릭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내 안의 가능성을 더 넓혀 가는 사람. 지금 내가 붙잡아야 할 것은 조회 수라는 결과가 아니라, 그 숫자에 흔들리면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태도일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나는 헤겔과 사르트르 사이 어디쯤 서 있는지도 모른다. 인정받고 싶은 욕망을 완전히 부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타인의 시선 속에서 나를 소진시키고 싶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숫자를 보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그 숫자를 대하는 나의 자세일 것이다. 조회 수는 나를 설명하는 하나의 현상일 수는 있어도, 나의 본질 그 자체일 수는 없다. 그리고 그 사실만 잊지 않는다면, 나는 이 낯선 디지털 세계에서도 나름의 속도로, 나답게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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