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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교육

백대현, 글쓰기를 가로막는 세 가지

by 백대현 2026. 7. 6.

글쓰기를 가로막는 세 가지

 

 

<마음의 소리>에서는 ‘시간, 물질, 가족’​이 글쓰기를 방해하는 요소라고 말한다. 이 세 가지는 인간이 무엇인가를 창조하고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일을 가로막는 현실적 장애물이다. 철학적으로 해석하면, 이는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붙들어 두려는 압력이며, 동시에 창작자로 살아가려는 존재를 막는 내적·영적 투쟁이라고도 볼 수 있다.

 

시간은 철학적으로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일상적으로 흘러가는 물리적 시간, 곧 크로노스이고, 다른 하나는 주관적 결단과 의미가 발생하는 시간인 카이로스다. 전자는 현실의 시간이며, 노동과 생산성의 시간이다. 인간은 타인이 정해놓은 일정, 생계를 위한 노동, 사회적 의무 속에서 살아간다. 문제는 이러한 시간이 글쓰기가 요구하는 시간을 잠식한다는 데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거대한 현실의 흐름을 잠시 멈추고, 자기 내면의 심연으로 가라앉는 후자의 시간을 확보하는 일이다. 따라서 ‘시간이 없다’라는 말은 바쁘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물리적 시간이 내 영혼이 숨 쉴 시간을 막고 있다는 뜻이다. 타인의 시간에 지배당하는 한, 내 마음의 소리를 듣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는 일은 쉽지 않다.

 

물질은 글쓰기의 또 다른 적이다. 에리히 프롬은 인간의 삶을 ‘소유의 양식’과 ‘존재의 양식’으로 구분했다. 물질은 강력한 소유의 양식이다. 무엇보다 물질은 생존의 문제를 인질로 삼아 창작자의 길을 막는다. 당장 생계가 불안하면 정신은 고결한 사유보다 생존에 먼저 매달릴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자본주의 사회는 끊임없이 “더 많이 가져야 한다”라는 욕망을 주입한다.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이 곧 행복이라는 믿음은 인간의 에너지를 분산시키고, 창작의 방향을 흐리게 한다. 글쓰기의 본질은 축적이 아니라 비움에 가깝다. 글을 쓴다는 것은 무언가를 더 쌓아 올리는 일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자기 안의 본질을 남기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글쓰기를 저해하는 물질의 힘은 단순한 경제적 곤란만이 아니다. 그것은 생존에 대한 불안과 세속적 가치가 인간의 정신을 아래로 끌어내려, 초월과 성찰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힘이다. 물질에 마음을 빼앗기는 순간, 인간은 자기 삶의 주체가 아니라 소비와 노동의 객체로 전락하고, 내면을 응시할 힘 또한 잃어버린다.

 

가족은 복합적이면서 끊어내기 어려운 관계다. 사르트르는 타인의 시선이 인간을 규정하고 구속한다고 보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게 가족이라고 했다. 특히 동양적 정서가 강한 우리 사회에서는 가족이 곧 나의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곤 한다.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라는 역할은 이미 무의식 깊숙이 각인되어 있고, 그 역할에 충실한 삶은 미덕으로 칭송한다. 물론 가족 안에서의 책임과 헌신은 숭고하다. 그러나 그 숭고함 때문에 가족은 끊임없는 희생과 도덕적 의무를 요구한다. 가장은 자기 꿈보다 가족의 생계를 우선해야 하고, 부모는 자녀의 삶에 깊이 개입해야 하며, 배우자는 서로의 기대와 책임 속에서 자신을 조정할 수 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혼자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글을 쓰려는 사람은 부담감을 느낀다. 거실에서 들려오는 가족의 부름, 혹은 “돈도 안 되는 일을 쓸데없이 왜 붙잡고 있느냐!”는 말은 글 쓰는 사람을 흔드는 현실의 목소리다. 가족은 서로 간 사랑하는 존재이지만, 역설적으로 내가 ‘온전한 나’가 되는 길을 강하게 가로막는 존재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내 시간을 스스로 조절해서 쓰는 일이며, 물질적 불안과 세속적 욕망을 넘어서는 일이고, 때로는 가족이라는 친밀한 관계가 요구하는 역할과 거리 두기를 감당하는 일이다. 그래서 글쓰기는 심심해서 하는 일이 아니다. ‘특별히 할 일이 없어서, 다시 취업 전선에 나가기 어려워서, 혹은 가족 구성원 각자 갈 길을 가니 나도 뭔가를 해봐야지’ 이런 마음으로는 오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글쓰기는 자기를 일 순위 두고 시간과 물질, 가족 앞에서 지혜롭게 대처해 나가며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끝까지 붙들고자 하는 사람만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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