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보다 사람을 심사했다
타 도서관에서 수필 수업을 맡은 강사님이 수업을 마무리하며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자체 백일장을 열었다. 응모작 11편의 심사를 부탁받아 어제 모든 작업을 마쳤다. 작품은 공정성을 위해 이름을 가리고 참가 번호만 적혀 있었다.
한 편씩 읽어 내려가면서 적지 않은 감동을 받았다. 물론 전문 문학상 심사위원이 아닌 내가 작품에 순위를 매긴다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같은 글쓰기 강사로서, 또 오랫동안 출판과 글쓰기 현장을 지켜온 사람의 눈으로 작품을 바라보려 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게 본 것은 ‘현재의 완성도’보다 ‘앞으로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는가?’라는 가능성이었다.
열한 편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수준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욱 고민이 깊었다. 그래서 모든 작품을 <마음의 소리> 철학과 기준에 비추어 읽었고, 그 관점에서 순위를 정했다.
<마음의 소리>는 글쓰기 기술을 가르치는 수업이 아니다. 글쓰기를 통해 자기 자신을 위로하고 치유하며, 잊고 지냈던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발견하는 내면 탐구의 과정이다. 목표는 오랫동안 글을 손에서 놓지 않는 사람을 만드는 데 있다.
참여자들은 먼저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가족과 직장, 사회적 역할 속에서 미처 꺼내지 못했던 마음의 소리를 조용히 글로 연결한다.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비로소 ‘작가’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만난다.
흥미로운 것은 <마음의 소리>가 글을 잘 쓰는 사람보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잠시 내려놓고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려는 사람을 더 반긴다는 점이다. 글쓰기는 기술보다 마음이 먼저 열려야 하기 때문이다. 내면을 마주하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 또 글쓰기는 나이나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낼 용기가 있는 사람이 끝내 성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을 쓰기 전에 먼저 ‘글을 쓸 수 있는 마음의 밭’을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사용한다. 수많은 질문과 인문학적 이야기를 통해 굳어 있던 마음을 조금씩 부드럽게 만든다. 바쁜 삶 속에 묻어두었던 감정과 기억을 다시 꺼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다양한 페르소나를 쓰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통과한 사람들은 서서히 자기 내면을 글로 끌어올린다. 그리고 자신이 쓴 글을 사람들 앞에서 직접 낭독한다. 그 순간 처음 경험하는 감정과 마주한다. 자신이 쓴 문장을 자기 목소리로 읽어 내려가면서, 글이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자기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거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흘려보냈던 ‘음성언어’가 ‘문자언어’로 바뀌는 순간, 사람은 글쓰기의 깊은 세계에 들어선다. 심리학자들도 오래전부터 내면의 상처와 슬픔, 미처 전하지 못했던 사랑과 후회를 왜곡 없이 표현하는 일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해 왔다. 억눌린 감정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쌓여 또 다른 고통을 만든다.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 채 오래 내버려 두면 몸에 병이 생기듯 마음에도 병이 자란다.
<마음의 소리>는 상처를 드러내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사랑도, 고통도 삶의 순리로 받아들이며 글쓰기를 일회성 감정 배출이 아니라 평생 이어 갈 삶의 태도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수업 중 피드백을 최소화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아직 뿌리를 내리지 않은 사람에게 성급한 평가와 충고는 오히려 글쓰기를 포기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수없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먼저 자신의 글을 여러 차례 고쳐 쓰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치유와 위로를 받고, 그 과정에서 성장을 생각하고 계속 쓰겠다는 의지가 생긴 사람만이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책을 출간하는 꿈 역시 그때부터 점차 현실이 된다.
이번 심사를 하면서도 끝까지 놓지 않았던 기준은 단 두 가지였다. ‘첫째, 이 사람은 정말 글을 사랑하는 사람인가? 둘째, 문장 속에 자신만의 문학성과 진정성이 살아 있는가?’였다. 좋은 글은 화려한 문장이나 어려운 표현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오래 쓰겠다는 마음, 끝까지 쓰겠다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즉 글보다 사람을 심사했다는 말이다. 작가를 만드는 것은 재능이나 기술보다 왜 글을 쓰는지를 아는 것과 계속 쓰겠다는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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