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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잡문

어설픈 신앙인의 눈높이 3.

by 백대현 2015. 7. 30.

 어설픈 신앙인의 눈높이 3.


T와 H의 문제는 보통 신앙인 입장에선 크게 구별하기 힘든 거 같다. 왜냐면 외형적 교회의 움직임이 거의 유사하기 때문이다.

굳이 그 차이를 간략하게 꼬집어보면, T는 약간의 융통성과 화합, 포용 등이 드러나는 반면, H는 정통과 기본, 근본 등을 더 내세운다는 게 그 차이인 거 같다.

그 목표와 목적은 동일하되 가는 길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보면 되니 보통 신앙인들이 그저 자신의 형편대로 가까운 지역에서 신앙생활을 하면 된다고 보면 된다.
허나 문제는 다음에 있다.

신앙의 출발선과 또 살아 온 과정 중에 내게 베어진 생각, 사상, 신념, 주의가 어우러져 나만의 확실한 뭔가가 이루어지는 과정 중에서 목회하는 분들이야 위에서 열거한 어떤 조직을 선택하여 그 길을 가는 것이니 무엇을 선택하든 옳고 그름은 우리 인간이 판단할 일은 아닌 거 같다.

하지만 일반 성도들은 신앙의 첫 출발점에선 무엇을 선택할 권리가 없고 솔직히 아는 게 없다. 우리가 선택한 거 같은 착각 속에서 출발한 하나님과 또 교회는 성경말씀대로 하나님은 우리가 선택한 게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만큼 현재 내가 섬기는 교회는 하나님이 인도하셨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 시작이 어찌됐든 내가 선택한 신앙 및 교회생활은 나를 버리는 싸움에 들어 선 것이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앞에 가는 싸움이라는 것이다. 허나 이렇게 쉬운 결론과 목적을 앞에 두고 우리 인간은 어리석고 교만하여 나의 자아를 적용하며 그 생활을 하고 있다.

알면서도 행하지 못함은 목회자들도 일반 신앙인도 별로 차이가 없으니 그 안타까움이야 어찌 할 수 있겠는가. 바로 그 어찌 할 수 없는 게 하나의 교회가 두 개로 세 개로 끝이 없이 갈라지고 있으니 참으로 슬프고 답답하다.

어느 날, 신앙 및 교회생활에 눈을 뜨면서 가장 먼저 알게 된 성경 구절이 있다.
히브리서 10장 24절로 25절 말씀,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와 또 요한복음 13장 34절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서로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다.

이 두 가지 말씀만을 놓고 봐도 교회는 반목, 분란, 분리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하나님의 명령이다. 헌데 서두의 갈라지는 역사를 보면 뭔가 자신들만의 이익을 바탕에 깔았다는 것을 쉽게 끄집어낼 수 있다.

일개 초보 신앙인도 알 수 있는 주님의 말씀을 수십 년간 성경 공부를 했다는 목회자들도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우고 자신의 자리와 이익을 탐내면서 순수한 성도들을 잘못된 길로 몰고 가는 것을 쉽게 목격하게 된다.

십일조 문제도 하나의 예가 된다.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는 가장 큰 숙제 중에 하나인 십일조 문제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시대 목회자들조차 서로 해석과 의견을 달리하는 그러니까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자신들이 선택했던 노선과 입맛에 따라 갈라지게 하듯 목회자와 성도 사이를 알게 모르게 힘들게 하거나 성도와 성도사이를 분란 시킬 수 있는 그런 요소 중에 하나인 것이다.(4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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