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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잡문

지하철에서

by 백대현 2015. 7. 18.

지하철에서

 

(200×. 10.)

 

 

신히 막차를 타고서야 안도의 숨을 쉴 수가 있었다.

자리가 하나 남아 있어 A에게 앉으라고 권했지만 녀석은 오히려 나를 강하게 밀치고는 한쪽 귀퉁이에 섰다.

A와 이야기를 나눌 위치가 아니어서 한동안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서울은 역시 세상 사람들이 다 모인 장소 같다. 이 늦은 시간에 북적대는 걸 보면 말이다.

저 많은 사람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갖고 무엇을 위해 이 늦은 시간에 몸을 밀치는 이 장소에 있는 것일까...

 

아마 저들도 사는 것은 지금의 나와 별로 다를 게 없을 것이다.

나는, 저들이나 나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미치자 그 집중은 나와 오늘 있었던 우리 모임으로 자연스럽게 초점을 옮겼다.

 

인상 좋은 B가 건배 제의도 없이 술을 마신다. 오히려 더 잘 마실 거 같은 C보다 잔을 비우는 횟수가 빈번한 거 같다.

그녀가 자주 비우는 것을 보며 내가 말했다.

 

"에구 어쩌냐 나는 술을 잘 못한단다."

 

"알어. 근데 너 전보다 말라 보인다."

 

"그러니? 그럴 거야...  요즘 분주했거든..."

 

아주 작은 말 한마디는 상대를 묘한 감정으로 이끈다.

그것이 사는 것이고 배려이고 관심이다. 비록 마른 것은 나지만 내가 전보다 말랐다는 것을 누군가가 안다는 것 그것이 우리들에게 서로 필요한 게 아닐까...

아무튼 지금의 술이 기분 좋아 마시는 긍정적 요소로 이어졌음 한다.

 

D는 편해 보인다. 몇 마디 나누어 보진 못했지만 옆의 친구들을 챙기며 나누는 이야기 속에 다정한 마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올리는 글에서도 이미 느꼈다시피 그의 배려와 희생의 맘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요소일 것이다. 그것을 몸소 실천하는 모습 앞으로도 계속 기대 해봐야지...

 

E가 생각보다 높은 음성이다. 귀염성 있게 유머를 내뱉는 모습은 전에 내게 명함을 내밀 때보다 한결 가깝게 느껴진다.

그가 노래방에서 허리를 돌리는 모습은 내게 감탄을 유발하기도 했다.

 

F는 훤칠한 키에 직업에서 나오는 용기 그리고 노래를 부를 때는 점잖아 지는 팔색조 같은 친구다.

전에 얘기해 본적이 없어 오늘은 그의 옆에서 그의 이야기를 유도했다.

잘하면 조만간에 내 똥차를 에쿠스로 바꾸어 주리라는 기대를 가질 만큼 그 기백은 놀라웠다.

하는 사업이 잘되어서 내게 에쿠스는 선물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자주 봤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G를 보면 역시 내 기분이 좋아진다. 전에도 그에 대해 말했다시피 그 친군 하늘에서 내리신 복이 하나 있다. 그것은 웃는 인상과 솔직담백한 가슴이다.

전엔 하는 일이 많이 꼬였다고 했었는데 물어보진 못했지만 잘 풀렸으리라 확신한다.

 

바깥에서 독대했던 H는 얘기를 해보면 항상 진솔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아마 세상을 보는 눈이 어쩌면 나와 비슷한 면이 있는 친구다. 그의 직업상 분주함으로 모든 모임에서 보진 못했지만 그의 말 사려 깊은 말 한마디는 내게 감동을 준다.

 

노래방서 먼저 일어선 I는 오늘은 날 좀 아쉽게 했다. 기대했던 아파트를 선보이지 않고 일어섰으니 말이다. 아마도 세금으로 사는 친구니 무척 바쁠 것이야...

아무튼 분주한 일상 중에서도 항상 참석해주어 회원의 한사람으로서 기쁠 따름이다.

 

J는 나를 많이 놀라게 했다.

스스럼없이 언행 하는 것은 전과 다름없었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예전의 아픔을 잊어가는 것 같아 예쁠 따름이다. 앞으로도 오늘처럼 밝게 살아주길 친구로서 기원해 주고 싶다.

 

K는 보면 볼수록 새로운 면이 보이는 친구다. 앉아있는 모습에선 숙녀의 기품이 노래를 부를 때 보면 또 다른 모습이다. 사람들 모두 보이는 외모가 전체가 아니 듯이 그녀도 그럴 것이다. 다음 모임에선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보일까...

 

여전한 신사 L은 보면 볼수록 듬직한 친구다. 그의 성실함과 청결함을 보면 항상 고개가 숙여진다. 언제까지나 우리 모임에 있어 주어서 다른 친구들에게도 버팀목이 되어 주길 바란다.

 

성격이 바뀐 것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것인지 그녀의 사십 생을 내가 다 알 순 없지만 M은 예전보다 다른 모습이다. 천성이 착해 보이고 수줍어하던 얼굴은 이젠 당당하고 적극적으로 변모된 모습은 긍정적인 변화 일 것이다.

 

느낌과는 다르게 N은 절제된 몸짓과 반짝이는 언행은 여러 갈래의 성격을 보인다.

이제 두 번 보고 나서 그녀의 생 또한 다 안다고 말 할 순 없지만 미묘한 재미를 간직한 친구 같다.

 

O의 예쁜 소녀의 모습은 남친들을 설레게 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마이크를 잡고 살랑살랑 춤을 추는 모습은 아마도 처녀 때 그 앨범과도 차이가 없을 것이다. 항상 밝게 웃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흐뭇해 진다.

 

P는 몸이 자주 아프다 보니 그 당당했던 힘을 어딘가에 조금은 놔두고 온 거 같다. 하지만 불편한 몸으로도 모임을 위해 친구를 위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보다 더욱 건강해져서 앞으로도 그녀의 모습을 봤으면 한다.

 

Q가 멋진 모습으로 친구들 앞에 섰다. 친구들을 위해 큰 짐을 지겠다고 당당한 말하는 그의 얼굴은 비장했다. 초창기 회원들은 잘 알 것이다. 그가 온종일 모임을 묵묵히 지키는 바에 매료되지 않은 이가 어디 있었던가. 그런 그가 이젠 앞에 나선다고 말했다. 물론 나를 포함 모든 회원들은 그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낼 것이다. 파이팅!!

 

일년을 고생한 R의 얼굴은 기쁨과 아쉬움이 교차한다. 술 한 잔으로 불그스레하게 변한 얼굴에서 그녀의 노고가 여실히 드러난다. 우리 모임 친구들은 다 알 것이다. 전부 고마워 할 것이다. 그녀도 그 정도면 된 거라고 항상 말했다. 작은 일에 충실한 거 그 자체가 얼마나 행복한 삶이겠는 가.

 

전 샵 S의 수고를 어찌 옷 하나로 다 할 수 있으리오. 무거운 자리에서 한 때는 본의 아니게 욕도 불평불만도 다 감수하면서 묵묵히 잘 이끌어 왔다. 회원의 한사람으로서 그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지 못해 미안스럽지만 나 뿐 아니나 모든 친구들은 그에게 존경을 표해야 할 것이다.

 

 

자리가 하나 더 생겼다. A가 옆에 앉아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기쁘다. 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 그리고 그 말을 받아 주는 거... 오늘 많은 친구가 비록 여러 사정으로 인해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우리에겐 그게 필요하다.

A의 말대로 우린 있는 그대로 나를 주고 너를 받아야 한다. 주고받는 데 있어서 계산이 앞서고 위선이 깔려 있으면 우리의 만남은 모래성일 것이다.

 

우리 다시 한 번 지난 일 년 동안 수고해 준 전 운영진의 수고에 감사하자.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친구들은 쪽지나 리플이나 전화를 이용해 박수를 주고 또 새롭게 출발하는 새 운영진에게 축하의 날개를 달아 주자.

그런 맘들이 모이면 우리 모임은 모래성이 아닌 철근콘크리트로 세워진 그런 모임이 될 것이다. (백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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