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알아야 할 것
병원 휴게실에서
멍하니 TV를 본다.
대부분 육신의 질병으로 누워있는 곳인데
TV 속 출연자들은
아랑곳없이 박장대소(拍掌大笑)하고 있다.
TV 옆 책장에서는
여러 종교단체에서 진열해 두었던 책들이
아까부터 나를 쳐다보고 있다.
안경을 착용했음에도 정확한 책명이 보이지 않아서
허리를 굽힌 채
곁으로 다가갔다.
예상했던 대로 가지각색의 옷을 입은 책들이
제멋대로 방긋하고 있다.
난 어김없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잡았다.
보통 사람들은 지금의 나처럼
내가 읽을 책은 내가 선택한다고 한다.
그러나 옳은 가짐이 아니다.
책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책이 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책은 저 자리에서 있었고
내가 다가가 책을 선택한 거 같지만
그 반대라는 것이다.
사람들마다 각자 어떠한 책과 접한 순간은
그 사람의 영혼(여기선, 자의식이라 해도 무방하다.)의
현재 수준이다.
책이 내 눈앞에서 춤을 추다가
그 사람의 취향과 수준을 파악한 뒤
알아서 매치(Match) 한다는 말이다.
저 진열장의 대부분의 책은
심령이 약해진 자들
즉 육신의 질병으로 누워있는 자들이나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온 사람들에게
이런 시간을 통해 수준이 올라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고통으로 신음하는 자들 앞에서
희희낙락(喜喜樂樂)하는 TV 속 저들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그 장면에 의지해 현재의 힘겨움을 달래고자 하는
그들의 가짐이 바뀌는 순간
그들 앞으로 다가 가고자 하는 책의 마음을
우린 알아야 할 것이다.
백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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