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사라진다
(200×. 8. 23.)
‘이쒸이...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꼭 이럴 때만 몰려요... 썩을 눔들... 올라면 좀 일찍 오던지... 아니면 낼 온다고나 하든지... 해놓으면 안오고... 안해 놓으면 안해 놓았다고 지랄이고... 아무리 고객이라지만 너무 하는 거 아냐... 띠브랄.... 언제까지 저 눔들 비위 맞춰 살아야 하는 지.. 원... 때려 부수구 진짜 백수나 할까부다...
우 띠팔, 그나저나 썩을 날씨는 와그리 더운겨 입추도 처서도 지난 지가 언젠데 와그리 후텁지근 하냐고...땀이 그냥 막 흐르네...암튼 짜증 지대로구만... 으메메... 시계는 벌써... 십분전 여섯시구... 그 친구에게 전화해서 같이 가자고 할까? 아냐아냐 괜히 나땜에 갸까지 지각하게 할 순 없지... 에궁... 일단 여섯시까진 있어보고 안오믄 그냥 내뺄거다 띠팔... 어휴! 열 받어...’
이번이 몇 번째 참석하는 건지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이번 모임은 여태까지 참석했던 지난 모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짜증과 신경질로 뒤범벅 되었다.
물론 고객과의 여러 문제도 있었지만 아마도 날씨가 후텁지근했던 것이 가장 큰 요인 중에 하나인 거 같다.
지하철 역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나의 얼굴은 땀으로 묘한 빛이 났지만 눈동자는 탁하고 입 주위는 잔주름이 더 깊어진 듯 보였다.
간단히 세수를 하고 지하철을 탔다.
야릇하지만 편한 미소가 나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스스로 일컫는데 친구들 앞에서 찡그린 얼굴로 인사할 수는 없지 않은가.
도착해서 보니 벌써 여러 친구가 방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시샵 A, 부샵 B, C, D, E, F, G, H, 그리고 그들 다음으로 나...
나중에 J, K, L, M, N, O, P 등이 순서와 상관없이 입장을 하고...
모임 초반엔 새로운 친구가 의외로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무척 기뻤다.
나는 - 이 정도의 성적이면 아마 모임 사상 최고의 참석률을 기록할 거 같은 - 기대를 은근히 가져 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꼭 참석했던 오랜 친구들의 모습이 끝까지 보이지 않자 약간의 아쉬움을 가진 채 여느 때처럼 슬그머니 자리를 일찍 떴다.
참석을 하던 지 안하던지 그것은 개인의 자유일 것이다.
그런 자유를 그 어느 누구도 막을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하철이 출발해서 내가 원하는 목적지로 오는 동안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회원들아 아니 친구들아,
너희들 아니? 인생은 만남의 연속이라는 것을...
친구들아, 어느 작가가 만남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했었단다.
예수와 베드로와의 만남은 혼과 혼의 종교적 만남이었고
공자와 안연의 만남은 인격과 인격의 성실한 교육적 만남이었으며
괴테와 쉴러의 만남은 우정과 우정의 두터운 인간적 만남이었단다.
또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만남은 이성과 이성의 맑은 순애적 만남이었다고
그렇다면 그 작가는 우리들 사이의 만남을 무엇이라고 말 할 거 같니?
사이버에서 만난 그저 그런 인스턴트 만남이라고 하려나?
왜 나는 인스턴트 만남의 인연에게
온종일 컴퓨터와 시름했던 눈이 흐릿해지면서까지, 어깨가 너무 아파 통증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타자를 치고 있다고 생각하니?
글쎄... 나는 이렇게 생각한단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수많은 만남 중에 많은 인연이 있을 테지만
그 어떤 만남도 우열 없이 평행해야지 수직적인 관계나 모임의 성격에 따라 아래 위를 생각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는...
한 가지만 더 말할까.
내 삶이 분주하거나 힘들기도 하고 실타래처럼 꼬여서 잘 풀어지지 않을 수도 있고 몸이 아파서 꿈쩍할 수도 없다 손 치더라도...
그 모든 답은 나만의 편견과 선입관이 없는 순수한 가짐으로 모든 만남의 인연을 대해야만 형통의 길이 열리는 거라고 본다.
세상일은 다 그런 거라고 나도 누군가에게 배웠거든 그래서 알려 주는 것이야...
위 같은 비슷한 어려움이 있음에도 참석해준 친구들이 그래서 고맙다.
비록 참석을 못했지만 참석자 보다 더욱 모임을 사랑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고맙다.
모임을 위해 항상 애쓰는 운영진의 노고에 다시 한번 감사하면서..
지하철 목적지에 도착하자, 비가 쏟아진다.
차 시동을 켜놓고 한동안 비를 가슴으로 받았다.
오늘, 내 인생의 하루도 빗물과 함께 이렇게 사라진다. (백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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