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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잡문

가을에 보내는 편지

by 백대현 2015. 7. 31.

가을에 보내는 편지

 

 

 

  

   구야, 들리니

   이 가을, 가을이 떨어지는 소리가

 

   왜, 너와 내가 함께 들었었던 가을이

   언제부턴가 내겐 들리지 않는 거니

  

   왜, 귀를 토끼처럼 쫑긋 세워 봐도

   내겐 가을이 들리지 않는 거니

 

   깊은 가을 밤,

   너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벤치를 찾았지

   그 날의 달빛도

   이미 옷을 갈아입은 그 나무 한 그루도

   변함없이 제자리에 있건만

   너만... 없어...

 

   친구야,

   네가 있는 곳도 지금 내가 있는 여기처럼 가을이니

   아니면 너만 더 좋은 가을을 찾아 간 거니

 

   내가 있는 여기의 가을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시림과 아쉬움과 그리움만

   저기 떨어진 낙엽과 함께 뒹굴고 있단다

 

   친구야,

   세월은 여러 번 바뀌어도 가을은 이렇게 다시 오는 데

   왜, 가면 갈수록 가을은 내게서 멀어지는 거니

   아무리 찾으려 해도 가을은 너와 내가 함께하던

   예전의 가을이 아닌 거 같아

 

   우습지 친구야,

   네가 간 뒤로 편하게 이런 가을을 나눌 수 있는

   인간관계도 없어

   현재의 사랑을

   지금의 가을에 끼워 넣고 싶지도 않고

   이 나이에 또 다른 사랑을 찾아

   다시 시작하는 것도 자신 없어

 

   친구야, 이럴 땐 네가 최고인데

   사람들은 이렇게 말 하더구나

   이 나이에도 가을을 생각한다고

   가을을 즐길 여력이 있냐고

 

   참 바보 같은 사람들이지 친구야

   그들은 아직도 모르는 것 같아

 

   너는 이렇게 말했지,

   가을은 지나가는 바람처럼 짧은 순간이지만

   그 짧은 시간이 우리 영혼을

   영원히 살찌운다고

   그리고 우리네 육체는 가을처럼 짧다 했지

   찰나로 머리는 온통 흰머리가 되고

   땅으로 돌아갈 순서만 기다리는 존재가 된다고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모른 채

   오늘의 삶이 영원할 거 같은 착각 속에서

   허우적거린다고

 

   그래, 친구야 네 말이 다 맞는 거 같아

   나도 이제와 생각해 보니

   그런 인간들과 하등 다를 게 없으니까

 

   네 말을 조금만 일찍 이해했더라면 아마도 이 가을을

   이렇게 쓸쓸하게 보내 지 않았을 텐데.

 

   친구야,

   아직도 너는 빛바랜 사진 한 장 속에서

   네가 사랑했던 사람과 가을과 낙엽 위에서 웃고 있어

 

   시간이 한참을 흘렀어도

   사랑하는 사람과 그 가을과 낙엽 속에서

   웃고 있는 네가 너무너무 부러워

 

   하지만 친구야,

   그런 네게 내가 한 약속을 이번 가을에도 못 지킬 거 같아

 

   네가 가던 날 나는 울면서 말했었지

   내가 죽도록 사랑하는 이가 생긴다면 네가 먼저 간 

   그 곳에 함께 가서 인사하겠다고

 

   이번에도 난 혼자 너를 보러 가야 할 거 같아

   아니 내년에도 내 후년에도 그 후에도 마찬가지 일거야

   넌 이해하지 친구야

   너는 나를 잘 알자나

 

   친구야,

   못난 너의 친구지만 네게 부탁할 게 하나 있다

   여기 가을은 어느 새 스러져가고 있어

   내 맘까지 저 가을처럼 스러지지 않도록

   네가 너의 가을 좀 나눠주렴

 

   백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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