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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잡문

내가 본과를 선택하게 된 과정

by 백대현 2015. 8. 12.

   

                                  내가 본과를 선택하게 된 과정


 


   2014년 12월 그 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모니터 앞에 앉았다. 모 포털사이트 검색 중에 본대 입학관련 안내를 보았다. 매년 마지막 달만 되면 여러 매체를 통해 나오는 안내라서 어떤 내용인지 잘 알고 있었지만 웬 일인지 그 날은 나를 과거로 돌아가게 했다.

본대에 입학하는 사람치고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속사정은 다 있을 것이다. 나도 예외가 아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진학하고 졸업한 고교는 내 삶에서 지우고 싶은 역사이다. 가고 싶어서 간 게 아니라 여러 사정상 걸음을 그곳으로 옮기게 했다. 당시 학교에서 배웠던 대부분의 교과는 내가 꿈꾸는 것과 하고 싶은 방향과는 판이했다. 나는 그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일기장에 수시로 기록했었다. 지금도 빛바랜 일기장에는 교수, 선생, 문학가, 철학가 등이 기록되어 있다.

 


나의 어린 시절 취미는 책 읽기와 글쓰기였다. 천성이 정적인 면이 강해서 그런 취미를 가진 것도 있겠지만 초등학교 1학년 때 돌아가신 아버지의 빈자리, 일찍 혼자되셔서 평생 질병으로 고생하신 어머니, 두 살 터울의 동생 셋은 나의 앞길에 장애물이라고 여긴 철없던 나만의 불평불만에 대한 표출 방법이었다.

일기장에 기록했던 문자는,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는 내 마음을 때로는 불편하게 때로는 거친 말과 행동으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배움에 대한 갈급함과 포기하기 싫었던 마음은 이십대 후반 본대 국문학과에 입학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입학하여 1년 동안은 성적과 관계없이 열심히 임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직장생활과 경제적인 문제는 나를 편안하게 공부할 수 있게 놔두지 않았다. 지금이야 여러 경로로 성적을 채울 수 있는 방법과 정보가 있다지만 당시는 첨삭과 출석 수업, 기말을 채우고 치르는 것 외에는 특별한 방법이 없었던 것 같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시험을 앞두고 지방 출장 때문에 시험을 치르지 못했다. 그것이 어렵게 시작한 학업을 흐지부지 중단하게 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후에도 안내를 보고 두 번이나 서류를 접수하거나 등록하려고 했었다. 세 번의 공통점은 지원서에 ‘국문학과’를 기재했다는 것이다. 국문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건, 어린 시절 꿈꾼 바를 이루기 위한 지름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부하고 싶은 마음과 기회는 위에서 잠깐 언급했다시피 현실로 인해 계속 뒤로 밀렸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나의 꿈과 희망도 서서히 지워져 갔다. 사실 대한민국의 제도상 정식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 교수나 선생이 되는 것이나 문학이나 철학을 공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나는 세상적인 꿈과 희망을 하나씩 지우고 버릴 때 종교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신앙생활은,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은 ‘내 탓이 아니고 국가나 돌아가신 부모, 부양책임을 질 수 밖에 없었던 동생들 탓’이라고 여기며 불평만 했던 나를 변화시켰다. 생각의 변화는,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했다. 긍정의 힘은 교회 내에서 세상에선 할 수 없는 교사직을 맡게 되었고, 오랜 시간 중고등부 학생들에게 성경을 중심으로 인간의 삶 등에 대해 가르치기 시작했다. 비록 물질적으로 따라오는 것은 없어도 나는 어린 시절 꿈꾸었던 교수나 선생으로서의 직분을 감당하게 된 것이었고 작년 하반기에는 평소 써두었던 글을 모아서 책도 만들었다. 책을 만든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남들이 보기에는 어설픈 내용일지 몰라도 나라는 사람이 있기까지 삶의 중심을 잡게 해준 분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리고 싶었고 두 번째는, 그분의 가르침을 받들어 인생을 방황하거나 절망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될 수 있는 글을 써보는 것이었다.

 


***

그 날은 본대 전형안내가 다른 때와 다르게 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날짜를 보니 내일이 마감이었다. 지원서를 접수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왜냐하면, 과거에는 졸업한 고교에 직접 가서 성적이 기록된 생활기록부를 발급받아 접수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졸업한 학교가 서울이고 하루 일과를 살펴보니 서둘러 갔다 와도 시간이 맞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다 다른 사항을 문의 하려고 본대의 대표번호를 눌렀다. 제도가 바뀌어 근처 학교나 주민 센터를 가면 서류를 팩스로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일을 멈추고 근처 학교에 가서 생활기록부를 발급받아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본대 홈피에서 알려주는 대로 움직였다.

공부할 학과에서 잠시 멈칫했다. 당연히 국문학과를 써야 할 내가 뭔지 모르는 어떤 힘에 의해 주저한 것이다. 문득 금년에 고교에 진학한 아들과 교회의 중고등부 학생들이 생각났다. 또 교회에서 토요일마다 시행하고 있는 유대인 교육 방법인 쉐마교실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국문학을 공부하는 것보다는 교육을 통해 더 많은 청소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라는 창조주의 계획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런 이유로 청소년교육학과와 평생 미련이 남아 있는 국문학과를 놓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결정을 못하고 헤매는 동안 좀 더 넓은 범주에 해당하는 교육학과가 가슴에 와 닿았다.

 


교육학과로 결정하고 서류를 작성해서 이십여 분 거리에 있는 안산시흥학습관으로 자동차를 몰았다. 내비게이션이 이상한 데를 알려주어서 약간 헤매기도 했지만 오후 늦은 시간에 간신히 접수를 마쳤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서 일에 열중했고 급박했던 접수과정은 일상에 묻혀 잊게 된다. 배움에 대한 열정은 바위 같다 해도 본대에서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오래전 경험해 봐선지 처음부터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합격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당연하게 생각했다. 연령이나 고교성적 등 조건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불합격은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았다. 입학은 타 대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월하지만 졸업하는 게 어려운 본대의 흐름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등록기간은 머리를 아프게 했다. 2월 초순 삼사일은 또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부정적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게 한 것이다. 아마도 튜터의 문자가 없었으면 나는 지금 이런 글을 쓸 일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

 


생소한 ‘튜터’ 란 단어와 그 분이 발송한 문자는 궁금증으로 이어졌다. 성격상, 궁금한 게 있으면 가만있지 못하는 성격이라 얼른 포털사이트와 본대 홈피에 접근해서 단어를 이해하려고 했다. 튜터란 직분의 정의와 참뜻을 알고 난 후 돌아보지 않고 등록금을 납부했다. 하루, 이틀 시간차이를 두고 튜터교실과 동과 카페에 가입하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나의 움직임은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지역 교육학과 1학년 과대표로 이어졌고 튜터의 가르침으로 학사일정을 비롯한 전반적인 사항 등을 도움 받으면서 해결해 나갔다.

나는 세상 모든 일은 창조주의 계획과 역사 속에 있다고 믿고 사는 사람이다. 내가 본 대학 교육학과에 입학한 것은 소금 빠진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고 얼렁뚱땅 과를 정한 것 같아도 지금 생각해 보면 창조주의 심오한 뜻과 계획이라고 믿고 있다. 평생을 꿈꿨던 국문학을 뒤로하고 교육학을 정한 뒤 혼란스러워 하던 나를 튜터의 자상한 가르침으로 중심을 잡은 것이나 내 의지와 상관없이 과대표를 맡아 책임감을 갖게 된 것이나 선배들이나 동년 학우들 중에는 생각과 추구하는 방향이 같은 사람들이 많은 것이 그 예에 속한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예를 더해 보면, 1학년 1학기 교과 편성이다. 교양과목인 「글쓰기」는 지금 내가 하는 일과 연관되고 「세계의역사」 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분야이다. 내가 출간했던 책의 주제인 인간의 문제를 우연찮게 과제물로 요구한 「사회복지개론」은 세상과 정치와 인간의 삶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게 했다. 전공과목인 「교육의이해」, 「평생교육론」, 「생애발달과교육」은 현재 교회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크게 보탬이 되는 학문이었다. 모든 여건과 상황이 과거처럼 쉽게 중단이나 포기하지 않도록 두 손과 발목을 꼭 잡고 있는 형국이다.

 


나는 며칠 전, 본대의 학사 일정 중 한 단계인 1학기 기말고사를 끝으로 6과목을 이수했다. 사람의 내일 일을 자신할 수는 없지만 현재 입장에서는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중단이나 포기는 절대하지 않겠다는 자신감이 있다. 그 이유로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좀 전 말한 대로 1학기 교과목이 내게 큰 즐거움을 준 것과 앞으로도 새롭게 접할 교과목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또 하나는, 내 꿈을 어느 정도 이루었기에 편한 마음으로 학업에 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 초반부에 어린 나이부터 지금까지 교수나 선생, 문학가나 철학가로서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는데 생각해보니 교수나 선생 역할은 교회에서 수년째 즐겁게 하고 있고 무명이지만 문학 및 철학가로도 현재진행형이다. 한 권의 책을 출판한 것 외에도 비상업적 용도까지 포함하면 몇 권의 분량이 있고 오늘도 쓰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적 사상과 이념을 중심으로 사무실을 찾는 사람들이나 주위 지인들과 철학적 질문 등으로 시작하고 끝을 맺고 있다.
마지막 세 번째는, 현재 공부하고 있는 교육학은 내가 가지고 있는 평소 마인드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다. 배움은 사람을 겸손하게 하는 큰 매력이 있다. 나는 ‘내 기억력이 빵점이 되지 않는 한 어떤 공부든 할 것이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나의 가짐은 평생교육이라는 교과명을 만나면서 막연했던 사고에 정확한 개념 정도는 채울 수 있었다. 또한 모든 교과목이 모든 삶 속에 조금씩 배어 있어선지 큰 어려움 없이 공부할 수 있었다.

 


위 세 가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믿는 분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이라는 것을 믿는다. 즉 ‘배움을 통해 얻은 나의 깨달음을 후대에게는 전수를, 동시대 사람들과는 교제하는데 써라.’는 그 분의 보이지 않는 명령이 본 대학에 입학하게 하시고 교육학과를 선택하게 한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끝-
백 대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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