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蘭)과 초(草) 1.
나는 가을을 좋아하면서도 가을만큼은 빨리 가기를 소원하는 아이러니(Irony)한 사람이다.
아마도 예민했던 학창시절 때의 일이 가장 큰 원인이 된 거 같다.
우리 또래에게 최고 인기 작가였던 유모님이 쓴 ‘지란지교(芝蘭之交)를.....’ 를 읽어 나가면서 풋내기 인생얘기 하나를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우스울 따름이지만 당시에는 진지했던 거 같다.
설익었던 우리들은 책을 앞에 두고 ‘친구’ 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난 이 책제목 그대로야. 지초(芝草)와 난초(蘭草)의 결합... 아니 어우러짐이라고 할까? 들에 외롭게 피어있는 이름 모를 풀과 란의 그윽한 향기... 절묘한 조화인데 무슨 말이 필요하겠니?”
“맞아, 이 분은 더 이상 벗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 없게 만들었어...”
“근데. 애들아, 이 작가님은 뒤끝이 명쾌하지 않아. 왜 꿈을 꾸며 라는 소망(所望)의 메시지를 던졌을까?”
그 친구의 질문에 우리는 한 동안 서로 말을 못했다. 그러던 중 나는,
“친구는 가을이야....”라고 대뜸 말을 해버렸다.
몇 친구들의 눈동자가 나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친구와 가을이 뭔 상관일까 하는 의문의 표시였다.
“친구는 가을이고 가을은 친구야... 가을은 우리네 가슴에 살며시 왔다가 또 말없이 사라지 잔어... 봄은 화려한 꽃으로 시작을 알리고... 여름은 바다로 하여금 살아 있음을 알리고... 겨울은 하얀 눈이 있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지만... 가을은 별로 내세울게 없어... 단풍의 아름다움은 겨울바람에 밀려 너무 짧거든... 가을은 다른 계절처럼 화려함도 별로 없고 수명도 짧지만 우리네에게 진실한 생각을 하게끔 해줘... 친구는 숨죽인 가을처럼 아니 말없는 초(草)처럼 그냥 옆에서 우릴 봐주는 거야.... 란(蘭)이 나라면 풀은 친구야... 친구가 있어 내가 돋보이고... 헌데 그게 잘 안되잖니... 그 님은 잘 안되는 것을 알기에 꿈이라도 꾸라고... 가을에만 느껴 보라는 이야기 같애....”
...e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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