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답하는 길
독일의 문호 괴테는,
‘국민은 각자 자기의 천직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이것이 조국에 보답하는 길이다.’ 라고 말했다.
간단한 문장이지만,
그의 말에 다음과 같이 적용을 해본다.
‘사람(성도)은 교회에서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것이 교회에 보답하는 길이다.’
조금만 문장을 해석할 수 있는 사람들은
두 문장의 차이를 근방 알 수 있다.
즉 국민으로서 열심히 하면 내 나라가 내게 준 것에 대한 보답이
되는 것이지만 후자는 막연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교회는 건물로 보면 해석하는 데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
교회를 하나님이라고 보면 해석이 쉽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다 알 수 있으나
이 글을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본다면
갸웃거릴 수 있기 때문에 짧게나마 부연한 것이다.
하나님은 나를 세상에 보내기 전에
나를 자신의 영광을 위해 어떤 그릇으로 쓸까를 이미 정하고
육신의 부모를 통해 나를 으앙하게 만들었다.
이미 우린, 운명론과 차원이 다른 나의 인생을
내가 가진 틀 안에서 내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세상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몸을 비비며 산다.
나를 알려면 교회에 나오면 된다.
교회에 나오면,
나 자신을 온전히 알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의 죄를 대속하시고
세상에 살게 하지만 나를 통해 꼭 받으셔야 할 게 있으신 분이다.
허나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내 맘대로 세상을 산다.
하나님은 나를 통해 받으실 것을 교회를 통해 알려 주신다.
그렇다면 내가 나서 언제 갈지도 모르는 인생사에
그것을 빨리 알려고 노력해야 할 게 아닌가.
그것을 빨리 알려면 교회에 내 몸을 던져야 한다.
사는 것이 바쁘고 힘들고 이런 저런 고난과 역경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빨리 교회로 오라는 힌트인 것이다.
빨리 들어 와서 내게 맡겨진, 내 그릇의 크기에 따라 맡겨진
일들을 제대로 수행해야 이 세상에 나를 보내신 하나님이 내게
보답(?)을 해 주신다는 것이다.
국민으로서 나라에 충성하는 것도
한 가장으로서 한 가족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도
다 일리 있는 명분이지만 그 모든 크고 작은 충성은
하나님에게 충성하는 그 바탕 안에 포함된 것이다.
오늘도 나의 삶에 충실하겠다는 것은
우리 인간의 생각으론 다 맞는 것 같지만
그 바탕을 뒤로 한 채 이룬 모든 것은
수일 전, 엄청 내려 쌓였던 눈덩이가 겨우 한 나절 내린 비로
다 사라진 것과 하등 다를 게 없는 것이다.
백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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