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글쟁이가 바람에 하는 말
글쓰기에는 중요한 요소가 몇 가지 있습니다.
글 쓰는 목적을 분명하게,
읽는 대상을 확실하게,
읽는 사람을 배려하는 점 등이 그것입니다.
두어 줄로 자신이 하고픈 말을
글로 정리할 수 없기 때문에
글의 종류에 따라 그 길이나 형태가
각양각색입니다.
현대 사회는 글의 질을 떠나
장문의 글은 읽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선지 대중의 인기를 얻고자 글을 쓰는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여
해당 글의 주제를 중심으로 꼭 필요한 만큼만
쓰려고 애를 태우기도 합니다.
교회 공동체 일원들이 참여하는 교회 홈피는
일단 그 목적과 주제는 거의 일맥상통하다고 봅니다.
단지 소수의 성도가 하나님을 온전하게 만나기 위해
몸부림 과정 중에 쓰는 행위에 속하므로
신앙이 어느 정도 성장한 사람들의 눈에는
해당 글에서 약간의 한심스러움이나 안타까움, 아쉬움 등을
보일 수 있을 겁니다.
교회 홈피에 올라오는 대부분의 글은
위에 기술한 대로 지은이가 이미 정해진 주제를 놓고
쓰는 글이기 때문에 신앙의 수준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진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해석으로 인한 차이로
가끔은 오해로 이어지고 약간의 분란으로
비춰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글을 단어나 구나 문장으로 보면
그 해석이 각기 달라지지만
글을 마음으로 보면 문장을 쓰는 기술 능력과 상관없이
글쓴이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글은, 지은이의 문장 실력에 따라 마음과 다르게 표현될 수 있으며
각종 비유를 통해 뜻을 전달하기 때문에
글을 읽는 사람의 글을 파악하는 능력에 따라
문제 소지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 한 예가 되는 것이지요.
(글은, 글쓴이의 내적상태 즉 마음이 글쓴이의 생각을 통해
글쓴이의 문장 기술 능력에 따라 문자나 기호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마음이 혼란스러우면 생각이 바르게 서지 못하고 그것이 글의
음이나 단어 하나에 영향을 미칩니다.)
교회의 홈피든 세상적인 공간에서의 글이든
목적과 대상에 따라 대상을 배려하는 뜻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쓰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말할 수 있으나
위에서 말한 대로 읽는 사람의 사상이나
이념이나 기타 등등으로 오해의 소지는 항상 있다는 말과 직결됩니다.
교회 공동체의 글은,
백지 한 장 차이에 있는 다 같이 못나고 부족한 사람들이
공존하는 이 시대 이들과 교제하며
하나님을 더 알아가는 진행 중에 일어나는
하나의 교제 수단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고로 그 질의 차이도 자신의 생각을 들춰내도
그 모든 것이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죄를 회개하는 글이라 한다면
그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다고 봅니다.
교회 홈피에 올리는 글은 그 글을 읽는 대상 즉
그 글을 읽거나 받는 대상이 인간이라기보다는
하나님으로 여기기에
우리가 어떤 표현을 해가며 쓰더라도
그 마음은 하나님만이 판단할 수 있기에
그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 홈피에 글을 올려서
차후의 일을 염려할 필요가 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지요.
물론 그 주제와 목적이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을 때를
국한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생각이 깊은, 신앙의 깊이가 있는 분들이
홈피에 글을 게시하지 않는 것은
글을 쓰지 못해서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글로 인하여 내 자신이 화두의 위치에 놓이기가 싫어서
회피하고 있다고 오래전부터 저는 생각해 왔습니다.
저는 솔직히 그 자세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뒤로 미루는 책임 회피로 봅니다.
이럴 때에 조심스럽다는 제목으로 글을 올려 주신 김집사님이
그래서 너무나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집사님이 올리신 글을 계기로
많은 성도 분들이 조심스럽지만 자신감을 가지고 올린
다양한 갈래의 글들이 보여지기를
기대하려고 합니다.
글 : 백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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