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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잡문

이른 겨울비가 내립니다

by 백대현 2015. 7. 30.

이른 겨울비가 내립니다

 

 

 

를 잘 아는 친구들은 저를 볼 때마다 뭔 재미로 사냐고 묻습니다.

보통 사람들처럼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워 대고 당구 게임도 하고 운동도 하고 여기저기 구경도 다니고...

해야 사는 맛을 느끼지 않겠느냐고 말을 합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일만 하고 살지만 재벌도 못 될 놈이, 매일매일 외상 건에 대한 신경으로 머리에 흰머리만 늘어나는 놈이... 하면서 놀리기도 합니다.

저는 그럴 때마다 고개를 끄덕여 모든 것을 수긍 하지만 돌아서서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원래 자리로 돌아오곤 합니다.

 

특히, 제가 좋아하는 오늘처럼 늦은 밤에 내리는 겨울비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친구들의 질문이나 쏜살처럼 빨리 지나가는 제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베란다 창에 비추어진 뜨개질을 하는 아내는, 제게 돈 이외에는 별로 던지는 말이 없습니다. 아들은 장난감과 맛있는 과자만을 주면 뽀 한번으로 돌아섭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삶이라는 것은 이미 귀와 머리에 굳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항상 느끼는 거지만 알 수 없는 아쉬움과 부족함은 여전합니다.

 

아내와 아들은 잠자리에 들고, 저는 여전히 멍하니 겨울비를 바라봅니다.

해 보고 싶은 것 한 번도 못해 보고 살았다고 생각하며 살아 온 제 자신이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옆에 있는 핸드폰엔 학창시절 친구, 사회 친구, 거래처 친구, 기타 친구 등이 입력되어 있지만 이 시간에 누구에게라도 벨을 울리게 할 수 있는 주변머리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으로 저는 위안을 삼고 있습니다.

 

오래전 돌아가신 어머니의 생각이 오늘따라 유난히 떠오릅니다. 돌아가시던 순간에도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리지 않는 냉혈한(冷血漢) 불효자였지만, 지금 제 나이에 혼자가 되셔서 3남 2녀를 다 키우고 가신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은 울적해 집니다.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고생하심을 다 알면서도 저는 그런 어머니에게 따뜻하게 손 한번 잡아주지 않았거든요.

 

모든 게 선명하지만 돌아오지 못하는 곳으로 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나 희미해져서 이젠 그림자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 아버지나 낼모레면 마흔하고도 몇이 되는 저지만 보고 싶음은 지금 다섯 살짜리 심정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를 생각하니 울적한 마음은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 친구 한 명을 만났습니다. 사이버 상에서의 글이나 말투로 보아 쾌활하고 깨끗한 친구라는 것이 짐작되는 그런 친구입니다.

 

점심을 하고 커피를 마시면서 친구는 짐작대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재밌게 해주었습니다. 듣는 걸 좋아하는 저는 친구가 하는 말을 듣다가 할 일을 잊을 정도였거든요. 다른 친구도 와주었으면 했지만 소심한 저는 절 보기 위해 다른 걸 희생하란 말을 하진 못했습니다.

저는 압니다. 예쁘게 말하던 친구나 오지 못해 아쉬 했을 친구나. 그들의 가슴에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자리 잡고 있을 가를... 지금 제가 멍하니 창밖을 응시하듯 말입니다.

 

멀리서 온 친구를 위해 귀한 시간을 함께 하며 사는 이야기를 기꺼이 해주는 그 친구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저는 오로지 한 가지만 생각했습니다.

저런 진솔한 친구가 많으면 많을수록 사는데 있어 지금처럼 아쉽고 허전할 때 좋겠다는 생각을 말입니다.

친구는 재밌는 이야기 외에도 주고 싶은 게 많은가 봅니다. 호주머니에서 지하철 티켓하나를 정성스럽게 꺼내 주었습니다.

참 고마운 친구입니다. 저도 무엇인가를 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겐 줄 게 별로 없었습니다. 돌아서 가는 친구에게 저는 가면서 먹으라고 목캔디 두 개만 건네주었습니다. 친구가 감기가 걸려서 목이 아프다는 소릴 들었거든요.

 

비는 내리고 울적해서 창밖을 바라보았지만 친구로 인해 이젠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친구가 좋은 가 봅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친구들도 미지의 사람들도 그런 기쁨을 찾았으면 합니다. (백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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