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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잡문

내가 공을 좋아하게 된 이유

by 백대현 2015. 7. 30.

내가 공을 좋아하게 된 이유

 

(2008. 10. 6. 교회 홈페이지)

 

 

을바람이 살살 부는 주일 오후,

몇몇 집사님과 청년들과 네트를 사이에 두고 서로 공을 상대의 빈 공간에 차 넣기 위해 땀을 흘린다.

 

한참을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지쳐서 물도 마실 겸 돗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가을을 유난히 타는 스타일이라 그런지 엉덩이가 돗자리에 붙어 떨어지지가 않았다.

오늘 따라 공을 쫓던 내가 유난히 처진다.

 

아마도 며칠 전 산행을 했던 후유증이 깔끔하게 날아가지 않아선지 일찍 지침을 느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은, 운동과 거리가 멀었던 내 자신이 언제부턴가 공과 친해진 것이다.

나는 가끔 집사님들과의 사적인 자리에서 ‘내가 공을 좋아하게 된 이유’를 침을 튀기면서 설명을 한다.

 

나는 동적인 면은 천성적으로 약한 나 자신을 너무나 잘 안다. 가끔은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고플 때가 있어서 이런 저런 핑계로 빠지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 저기서 웃음과 고함으로 손짓발짓하는 집사님들과 청년들 간혹 학생들을 보면 이내 그런 마음은 사라진다.

 

하지만 가을은 역시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사색과 대화를 즐기는 나는 쉼을 핑계로 내가 공을 좋아하게 된 그 초심을 되돌아보았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 마음, 그 중심은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은 있지만 그 하나님을 깊게 알겠다는 실천엔 아주 인색하다. 아마도 그것이 내게는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생각한다.

 

며칠 전 산행 길에 모 집사님이 “혹시 집사님은 목회에 관심가진 적 있습니까?” 라며 물은 적이 있었다. 나는 그 말씀에 그저 소리 없는 미소로 넘겨 버렸다.

 

글쎄 내 생각이 맞는 지 틀린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그런 귀한 하나님의 일을 내가 하고 싶다고 하고 안하고 싶다고 안하고를 결정할 수 있겠는가.

 

지금 와서 생각하면 인간적인 생각으로 신학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전혀 아니었지만 그저 ‘목회자의 삶에 대한 자신이 없다.’ 가 ‘그 길에 일 퍼센트도 염두에 두지 않았다.’ 가 솔직한 답변일 것이다.

 

나는 그 집사님의 질문에 뜸을 들인 후에 “네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라고 대답했고 그 집사님은 지나가는 말로 “어울릴 거 같다.” 는 취지의 말을 하셨다.

 

나는 웃으면서 “사실 저는 신학보단 정치나 사회에 더 많은 관심이 있습니다. 허나 중단한 공부나 졸업장이 없다는 이유로 그 또한 포기했습니다. 참으로 나약하고 약한 사람이지요.”

 

주위의 지인들은 내게 정치에 관한 소질을 자주 말한다. 무엇을 보고 그것을 말하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내 자신을 잘 알고 있다 보니 아마도 그 면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나는 그 집사님과 또 다른 이야기에서 이런 말을 한 적도 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저 또한 지는 것을 무척 싫어합니다. 정치든 사회든 문학이든 사회적 현상이든 어느 누구와도 주제를 놓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지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허나 딱 한가지만은 대화를 안 하려고 하는 게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관련입니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제가 아직도 죄책감을 가지고 사는 게 하나 있는 데 그것은 군 생활시 다른 부대에 지는 게 싫어서 하급 병을 훈련시키다가 병사 중 한명을 절름발이로 만든 적이 있었습니다. 그 병사를 생각할 때마다 얼마나 후회하고 가슴 아픈지를 몰라요. 근데 요즘은 축구든 족구든 맨 날 져요... 그런데도 화가 나지 않아요.”

 

나는 그 이유를 하나님 말씀을 알면서부터 세상에서 이기려하는 것에 대한 진정한 앎을 알게 된 것이라고 속으로 말을 했다.

 

나는 동아리 모임을 통해 바로 저 앞에서 공을 차는 분들을 통해 변화를 가진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저 모임을 비록 나의 입술을 통해 건의를 통해 시작된 것이지만 약간의 회의감이 지금 부는 가을바람에 섞여 가슴을 혼란하게 하는 느낌을 받고 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은 다 같지만 그 길은 조금씩 다를 수 있음을 나는 이미 인정하고 알거도 같은데 지금 부는 바람에 섞인 의미는 무엇인지 그 혼란함을 벗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나 자신의 명예나 승리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면 나는 또 다른 절름발이 한 명을 만들지도 모른다. 아마도 개중에는 나란 사람이 그런 욕심으로 지금 행함을 가지고 있다고 오해를 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내 나이 이미 사십이 넘었고 하나님을 안 것은 초등시절이고 기독교 학교를 다니면서 성경을 알게 되었고 군 생활을 통해 세례를 받고 친구를 통해 성경을 선물 받으면서 하나님께 다가갔다가 청년시절 세상에서 방황하다 광명교회를 찾게 되었다.

 

나름대로 핑계거리가 있어 섬기는 교회를 형식적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이 나이가 되었지만 요즘은 공을 차면서도 산을 다니면서도 왜 그리 가슴이 답답한 마음인지 내가 나를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

 

워낙 관찰력이 뛰어나고 세심한 성격이다 보니 지금 떨어질 듯 말 듯 한 낙엽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겨우 이런 바람에도 사색에 잠기듯, 보일 듯 말 듯 한 묘한 분위기가 돌고 도는 저 앞 내가 섬기는 교회 앞의 가을바람을 나는 나의 머리에서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공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과 호흡을 나누기 위함이다. 그 호흡을 통해 나의 신앙과 상대의 신앙을 함께 발전시켜 우리 주님께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공 하나를 통해 우리의 그런 행위를 통해 더 많은 안 믿는 자들을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하는 계획을 가졌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확신하고 있다.

 

세상적 모든 면에서 내 자신의 생각을 담아 기획하고 나아가고 있지만 유독 약한 신앙생활만은 나 혼자의 힘으로 할 수 없기에 나는 공을 쫓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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