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치원생
우연히 CTS TV에서 모 교회 장로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의 간증을 이야기 하면서 믿음의 4단계를 세상의 학력에 빗대어 말했다.
“초등학생 단계, 초등학생 수준은 주일 예배를 제대로 섬기는 자. 중학생 단계, 주일 예배와 십일조를 온전히 하는 자. 고등학생 단계, 주일 예배, 십일조에 새벽 기도를 빠짐없이 하는 자. 대학생 단계, 주일 예배, 십일조, 새벽 기도에 생활 전체를 성결한 마음으로 사는 자.” 라고 자신의 말을 마무리 했다.
그는 각 단계를 말하면서 온전히 제대로 하는 것을 조건부로 달았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한동안 소파에 앉아서 나 자신을 돌아봤다.
‘뭐야, 난 유치원생 정도도 안된다는 말이잖아? 아니지, 다른 건 몰라도 주일만은 지키는 편이니 초등학교 1학년 정도는 된다고 해야 하나??’
어느 지인이 준 테이프를 들었다. 모 교회 목사님의 설교 내용이었다.
“여기 교회 의자에 사십 명이 앉아 있는 게 백 명이 앉아 있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이 인원 중에 과연 몇 명이 하나님을 완전하게 믿느냐 그게 중요한 겁니다. 교회 나오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몇 가지 사역을 열심히 하는 것이나 기도하러 기도원에 가는 것도 중요한 게 아닙니다.... ”
나는 그 테이프를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뭐야?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면, 내가 그리스도 자체가 되라는 건가? 쩝쩝,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네, 아니지, 어쩌면 내가 평소 생각하는 진정한 크리스챤의 삶을 말하는 게 아닐까? 오호 그렇다면, 비록 그런 삶을 살지 못하고 있지만 나의 평소 그 생각이 잘못된 건 아닌 것도 같네....’
두 분의 말에서 나는 이런 정리를 하게 됐다.
사람마다 하나님을 믿게 되는 시간의 차이는 있다. 다만, 그 출발부터가 중요하다. 그 장로님은 믿음의 성장 단계 그것을 말하는 것이고 그 목사님은 장로님 말씀처럼 그 단계를 신실하게 거쳐 진정한 하나님의 자식으로 거듭 태어나라는 말씀이라고.
그러나 그러나 나는 여기서 멈추지 못한다.
‘그 목사님 말씀처럼 진정한 크리스챤만 교회 의자에 앉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면. / 과연 몇 명이나 떳떳하게 앉아 있을 수 있을까. / 그런 인간이 정말 있기는 하는 걸까. / 오 노노노, 완전함을 백으로 놓고 보면 그 백점은 없을 거야. / 99점부터 1점까지 다양하게 모여 있긴 하겠지. / 내 비록 1점이라 한들 인 믿는 0점하고는 그 차원이 다를 테고. / 하나님은 그 1점조차도 사랑 한다는 것을 난 알아. / 아마도 그 목사님은 완전치 못한 인간이 그저 참된 기독교인으로 거듭 태어나라는 말씀일거야. / 그 장로님도 1점에서 시작하여 차츰 학점을 따 가라는 그런 의미일 것이고. / 그래, 그럼 내가 할 일은 날 1점으로 놓고 볼 때 소수점의 인간들을 나 이상의 사람으로. / 어울리며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일 거다. / 어쩌면 내가 할 일은 그것일 지도 모른다. / 그것이 차츰 학점을 높여가는 그 길을 나 아닌 그들을 통해 얻는 것인 지도 모른다. / 나보다 나은 학점을 가진 사람들은 일단 무시하고서라도 말이다.’
(2007년 6월 15일 금요일 교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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