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히 바라만 봐주면 되는 것
(200×. ×. ×)
남들보다 한 시간 일찍 도착했다.
멍하니 기다리기가 어색해 모임 장소의 뒷동산으로 두 다리를 옮겼다.
아직도 다 피우지 못한 봄꽃들이 여기저기서 자신의 몸을 흔들고 있었고
산 중턱까지 치고 올라온 콘크리트가 살아 숨 쉬던 산길을 이미 헤치고 있었지만 공기만은 그 어디에도 비견할 수 없을 만큼 상쾌했다.
모임 때마다 그랬듯 일을 마무리 하고 오지 못해 약간은 마음이 편치 않았으나 산과 나무들 그리고 조금 후에 볼 친구들을 생각하니 이내 마음은 지금의 공기처럼 깨끗해진다.
오늘은 또 어떤 새로운 친구가 나올까... 그리고 기존의 친구들 중 어떤 친구가 세상과 싸우느라 참석을 다음으로 미룰까...
돌아오는 길에, 나는 또 아는 척을 했다.
내 옆자리에 앉은 친구와 뒷자리의 친구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 나는 단정해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나이에
자신의 남편이나 아내가 내 자신의 언행에 집착한다는 것은 둘 중에 하나일 거라고.
하나는 자신이 바깥에서 딴 짓을 하는 것에 대한 상대적 행위이고 또 하나는 정말 사랑하는 맘이 아직 남아 있어서 일거라고...
하지만 난 후자를 더 정확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왜? 그것은 십여 년 이상을 살을 비비며 산 자신의 반려자가 사랑스런 이성으로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은 불행하게도 사실일거라는...
어쩌면 본능 같은 그런 인간의 속성이, 속고 속이며 사는 것이 어쩌면 참이 아닌 데 언제부턴가 참처럼 되어 버린 세상이, 이미 우리가 태어나기 훨씬 이전부터 벌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길고 장황하게 그 설명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A와 B의 사내다운 모습은 아직도 내 눈에 뚜렷하다.
함께 족구를 하면서 내가 질 낮은 농담을 해도 묵묵히 받아 주는 두 친구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고맙다.
항상 오버하는 나는 그들의 삶도 평탄치 못함을 직감했고 그래선지 그들에게 함부로 어설픈 질문을 할 수가 없었다.
단지 짧은 시간이나마 자신의 삶에서 빠져나와 다른 또래의 삶을 비켜서서 구경하는 것 자체만이라도 뭔가 위안을 가질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작년 연말부터 꼬박 참석해주는 C의 여성스런 모습이나 짧게 자른 머리가 아주 잘 어울리는 D, 살이 전보다 많이 빠진 E, 술잔을 대하면서도 얌전하게 말을 이어가는 F.
막판에 아파트를 여전히 멋들어지게 열창한 G, 언제나 무대를 허리로 휘어잡는 H, 오랜만에 나와서 화려하진 않지만 여전히 절제된 섹시한 몸매를 자랑한 I.
금방 등산을 마치고 하산한 건강한 모습의 J와 늦게 도착해서도 탕을 잘 챙겨먹는 K, 사정상 먼저 나가야 했던 L, 내가 놀림을 던져도 부드러운 유머로 넘겨 준 우리의 부샵 M과 모임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부샵 N.
참석한 친구들 모두 어떤 목적과 목표로 여기에 나왔는지는 하늘 외엔 모를 것이다.
그 어떤 이유로 이 자리에 나왔든지 그것은 어쩌면 별로 중요치 않다.
단지 우리 모임의 모토처럼 또래라는 공통분모 하나가 있기 때문에 여기에 선 것이고, 자신의 그 목적과 목표에 약간은 위배가 있더라도 다른 친구들을 위해 조금씩 양보하는 미덕이 있기에 여기에 있는 것일 게다.
내가 돌아오는 차안에서 아니 다른 모든 친구들에게 하고픈 말이 하나 있었다.
우리 또래의 모임은 각자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에 닥쳐오는 모든 무거운 짐을 덜기 위해 모임에 참석하여 어느 노랫말처럼 술 마시고 노래하며 춤추며 날리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서로에게 짊어진 무거운 짐을 서로 공유하면서 그저 그가 이겨 나갈 수 있도록 묵묵히 바라만 봐주면 되는 것이다.
세상을 살면서, 그런 짐들과 상대적인 약간의 우열로 인해 오히려 나 자신을 숨기려 하는 것은 나의 삶을 파괴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 나이는 말을 하지 않아도 어깨가 무거운 나이 일 것이다.
여친들은 여친들 대로 남친들은 남친들 대로...
내가 그들에게 그들이 나에게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동 세대에 공존하는 것 자체 하나로도 서로에게 작은 힘이 되지 않을까? (백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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