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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잡문

아들과의 달리기

by 백대현 2015. 7. 30.

아들과의 달리기



얼마 전, 아들과 운동장 열 바퀴를 도는 달리기 경기를 했다. 나는 아들의 기를 살리기 위해서 아홉 바퀴 정도는 뒤에서 뛰다가 마지막에 역전을 하겠다는 자세로 천천히 뛰었다.
차츰 계산했던 순간이 다가 오면서 나는 속도를 내려고 다리에 힘을 주었다. 헌데 뒤를 돌아보던 아들이 아빠가 속도를 높이는 것을 보더니 오히려 자신의 속도를 더 높이며 먼저 골인을 했다.

어이가 없었지만, 어쩌다 그런 거겠지 하는 기분으로 다음 날 다시 하기로 했다. 전날 졌던 나는 처음부터 아들 뒤에 바짝 붙어서 뛰면서 이번엔 일찍 앞서야겠다는 작전을 짜며 일곱 바퀴정도를 돌면서 좀 더 힘을 주었다. 허나 내 계산은 전날처럼 어그러지고 말았다. 아무리 앞서려고 해도 아들을 앞서지 못한 것이다.
등에 땀이 나면서 까지 뛰면서도 나는 초등학교 4학년 아들에게 연거푸 진 것이다.

안되겠다 싶어 이쪽 골대에서 저쪽 골대까지 단거리를 뛰어 보기로 하고 시작을 외치며 밥 먹던 힘을 다해 뛰는 데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힘을 주어도 아들은 옆에서 나란히 뛰고 있었고 오히려 한두 발짝 나보다 앞서서 골대 터치를 했다.
아들은 달리기뿐만 아니라 야구에서도 축구에서도 아빠인 나보다 스스로 성장해 가면서 서서히 이미 앞서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 아침은 샤워를 마치고 나온 아들의 다리를 멀찌감치 에서 쳐다보면서 허물 거리던 허벅지 살이 점점 근육으로 발전하는 것을 보며 한편으론 흐뭇하면서도 세월의 빠름을 동시에 느꼈다.

아들에게 져가는 나를 거울에 비춰보니, 얼굴이야 당연히 사십 중반의 나를 보기도 하고 검은 색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난 흰 머리 수가 날로 많아지는 것을 본다.
주위 성도 분들과 대화중에도 커가는 애들 문제 등 생활 다방면에서부터 그와 나의 체력적인 문제도 화제가 되고 있다.

허나 이야기를 깊숙하게 나누다 보면, 신앙을 하는 우리네 사이에도 여전히 그나 나나 내 자신들이 내 자식들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마음속에 교만은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
어쩌면 아직도 하나님 앞에 우리는 다 내어 놓지 못하고 나의 계산과 생각과 의지로 무언 가를 이루려는 욕심을 보이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건강을 유지하고 싶어 보약을 먹는다 해도 우리는 백세가 되기 전에 나의 아들 세대에 세상을 맡겨야 하고 내가 아무리 박식한들 자식 문제나 세상 모든 일들이 나의 뜻대로 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아직도 내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연세는 높지만 호랑이 같은 눈과 멋진 자세로 세상을 호령하던 집사님이 병원에 누워 있는 것을 보고 나오면서 그가 병원을 스스로 걸어 나온다면 앞으로 하나님의 일에 더욱 집중할 것이라는 말이 내 귓가를 울리면서 그의 자리에 차츰 우리가 누워있을 것이고 이 아빠를 벌써 달리기로 이기고 있지만 그 후에 누울 내 아들을 미리 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야 하는 지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도 진한 아쉬움과 동시에 느끼면서
나는 짧은 생 동안, 서로 간 시기하고 질투하고 경원했던 우리 인간들... 아니 속 좁은 내 자신이 아들과의 달리기와 병문안 중에 들었던 그 분의 말이 내 귀를 통해 가슴에 박히면서 유난히 바보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글 : 백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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