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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잡문

이런 시간을 내게 허락하신

by 백대현 2015. 7. 30.

이런 시간을 내게 허락하신


생각할 거리가 있으면

습관처럼 얼른 핸드폰만 들고
공원으로 간다.

자주 거닐던 밤 공원의 정경(情景)이
평소와 다르게 많이 변해 있었다.

공원의 분위기는 아랑곳없이
덮개를 열고 새롭게 가입한 밴드에서
어린 시절 벗들의 번호를
가리지 않고 연락처에 담았다.

그러자 ××나 ××에 그들이 등장한다.
한가함을 핑계로 그들의 공간을

주인의 허락도 받지 않고 구경했다.

각기 사는 모양과 주테마가 있었다.
지인들과 운동하는 것을
아니면 하는 일을, 가정을, 자식을...

사람마다 하루 24시간 숨 쉬는 건 같아도
사는 방법이나 목적 초점 등은 차이가 난다는 것을
예상했던 대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러 공간을 들락날락해도
내가 찾고 기다리는
낭만을 즐기는 벗들은 의외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로등에 의지하여 걸음을 옮기면서
벗들의 공간을 훔쳐보면서
‘이젠 다 이렇게 시들어 가는 구나.’ 를 생각하니
표현할 수 없는 아쉬움에 소리 없는 한숨이 나온다.

모 철학자는,
‘사람은 살아가면서 살기 위해
어릴 적 가슴에 품었던 낭만(浪漫)은
시간과 함께 서서히 죽어간다.’ 라고 했다.

아마도 낭만이 죽어간다는 것은
그의 말대로라면
나이를 먹어간다는 증거 중에 하나일 것이다.

나 자신의 삶의 중심이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몸부림이나
자식을 먼저 생각한다는 마음이나
남들보다 뭔가 앞서야 한다는 초조함이나 기대감
아니면 하는 일을 통해 얻고 싶어하는
명예, 권력, 물질 등...

나도 그들과 하등 다를 게 없으니
무슨 말이 필요하겠느냐마는
이것이 보통 사람의 삶이라면
너무나 분하고 속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이를 먹어가며 가장 힘든 것은
차츰 사라지는 낭만이라는 공간 속에
삶에 지쳐 생겨난 절망이 채워지는 것이다.

이럴 때에 감사하게도 다행인 것은,
어제 ××으로 내게 보내져 온
모 친구의 장문의 인사다.

비록 살기 위해 하루하루를 세상과 타협하며
살고 있다 손치더라도
이런 시간에
티끌 먼지만큼이나 그 낭만을 유지하려는
나나 그런 친구가 있다면
현실로 인해 잠재(潛在)되어 있는 친구들을 찾아낼 수 있다면
나이 먹는 것이 그리 나쁜 것은 아닐 거라는
결론을 얻는다.

‘밤 산책은 이래서 참 좋다.’ 를
거듭 확인하게 되면서
이런 시간을 내게 허락하신
사랑하는 나의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백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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