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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잡문

헌신예배를 드리고 나서 1.

by 백대현 2015. 7. 31.

 헌신예배를 드리고 나서 1.




개인이든 조직이든 한 국가든 행한 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그 기록되어진 즉 행해진 내용들의 결과와 상관없이 그 역사로 인해 우리 다음 세대의 전진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역사 공부가 국, 영, 수 성적이 미래의 성공을 좌지우지한다는 이상한 논리에 밀려 등한시 되는 것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나라와 민족이 없이 어찌 내 부모가 있고 내가 있을 수 있으며 그 뒤에 성공이 있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금이라도 역사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정책 담당자가 나와서 학생들에게 그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알 게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목적 또한 위 내용의 연장선이다. 크든 작든 교회 내에서도 행사의 준비과정과 결과를 역사에 남기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내 자신부터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헌신(獻身)의 사전적 의미는, ‘몸과 마음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하다. 어떤 일이나 남을 위해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생각하지 않고 몸과 마음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하다.’ 란 뜻이다.

우리는 세상적인 헌신의미가 아닌 하나님의 일을 앞에 두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말하는 헌신예배의 의미는 '하나님의 일' 을 위해 헌신할 것을 결단하는 자리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한 정의라고 본다.
내가 섬기는 교회 뿐 아니라 모든 교회는 여러 갈래의 헌신예배를 드린다. 어쩌면 모든 교회가 하는 것처럼 우리도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예배의 하나로 매년 반복되는 교회 일정이나 각 기관의 연례행사의 하나로 여길 수 있을 것이다.

본 교회는 설립한 지 16년을 맞이했다. 세상의 나이로 치면 이젠 중학생 정도의 나이에 해당된다.
중학생 정도라는 세상적 분위기와 교회 공동체는 비교할 수 없고 그 대상으로도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외형적인 규모나 인적 자산이 부족한 작은 규모의 교회들로선 헌신예배의 중요성은 무척 중요할 것이다.
왜냐하면, 헌신예배를 통해 누구가가 헌신을 결단하는 것인 만큼 교회 내부적으로도 잠재되어있던 인재 등장과 동시에 큰 에너지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설립 16년에 해당되는 본 교회는 객관적인 눈으로 보면 부족한 것이 많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두고 티끌 크기에도 미치지 못하는 자가 논한다는 것은 큰 교만에 해당되겠지만 주님은 모든 일을 인간을 통해 이룬다고 믿기 때문에 나의 생각을 펼치는 것을 누군가가 막을 권리는 없다고 본다.

본 교회도 설립 초기부터 남전도회 라는 기관이 존재했다. 지금이야 남전도회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지 그 목적과 목표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초창기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몇 년 동안 총무를 맡았다가 금년에 처음으로 회장의 직분을 받고 나서 나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할 지 나름대로 고민했다.

주님의 계획과 역사를 내 자신이 어찌 알 수 있겠냐 만은 금년도 내가 받은 말씀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뽑았을 때 내가 선 기관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뜻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헌신예배를 앞두고 관례대로 행하는 예배를 벗어나 어떤 변화를 갖출 까를 생각했다. 기본적인 예배 순서는 지키되 찬양이나 말씀 등을 예년과 다른 모습으로 하고 싶었다. 찬양 인도나 말씀 등을 우리 안에서만 찾는 것이 아니라 외부인을 통해 색다른(?) 분위기도 갖고 싶었다. 허나 준비 없는 갑작스런 변화는 오히려 해가 된다는 생각이 들면서 주어진 여건 안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금년도 헌신예배의 주목적과 방향을 새로운 인물 즉 젊은 회원들이 주님께 결단하는 시간이나 자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장 먼저 했다.
예배위원과 특송 등에 그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부탁했다. 다행히 그들은 회장의 생각을 알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참여해주어서 너무나 감사할 따름이다.

사회라는 권한을 이용(?)하여 광고시간을 통해 전할 메시지를 연구했다. 회원뿐만 아니라 그들의 부인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자리에서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찾기 위해 성경을 펼쳤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예배 시간을 기다리다가, 요즘 한창 바쁘게 움직이는 회원과 십여 분간 대화를 나누었다. 그와의 대화 내용을 다 옮길 순 없지만 남자들만의 고뇌와 책임감 등을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참으로 기가 막힌 것은 성경에서 찾았던 구절과 메시지 내용이 절묘하리만큼 일치했다는 것이다.

얼만 전에 크게 깨달은 내용이 있다. 똑 같은 하나님 말씀 앞에서 유대인과 기독교인의 반응이다. 하나님 말씀을 새기며 모든 생활에서 적용해 나가며 삶의 풍요로움을 느끼는 유대인과 그렇지 못한 기독교인의 차이다.

모 회원과 대화에서도 나는 그것을 확신하게 된다.
사회자라는 기능을 이용하여 나는 하고 싶은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그 메시지를 다 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곧바로 결론부분만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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