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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잡문

오늘도 진행 중

by 백대현 2015. 8. 3.

 예수사랑 새 생명 축제』는 오늘도 진행 중



질 무렵, 같은 교회를 섬기는 평소 존경하는 ○집사님이 바쁜 일과 중에 가게로 찾아 오셨다.

“B집사 미안해요. 교회에 어떤 불만이나 불평이 있어서가 아니라 내 개인과 가정에 문제가 있어서... 약간의 시간이 필요한 것일 뿐...”

함께 하는 젊은 성도들 중에서 ○집사님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물어 오면 나는 이렇게 건성(?)으로 대답한다.

“어, 그런 게 있어. 가끔은 모른 척 하는 게 좋을 때가 있네. 그 분만이 아니라 자네나 나나 모든 인간에게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문제이자 일이거든...”

나는 기회가 날 때 마다, 연배가 나보다 위인 집사님에게 고자질(?)하는 게 있다.

“집사님, 이건 순전히 참고할 사항인데, A성도는 이런 고민이 있는 거 같고 B성도는 하는 일이 이런 거 같고 C성도는 이런 문제가 있는 거 같아요. 근데 제 선은 넘은 거 같고... 집사님 정도 되는 분들이 나서서 해주어야 할 일인 거 같아요.”

나는, 비록 ○집사님에게 들은 그 사정 내용이나 그 내용을 또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순 없지만 들은 이야기와 나의 대답과 또한 나의 고자질 안에는 인간에게 일어나는 모든 문제가 다 담겨 있다고 본다.

인간이 각자의 그런 문제들 앞에서 한없이 무너져 버리는 것을 수없이 목격했고 나 또한 여러번 경험했기 때문이다.

*****

매년 어느 교회나 주님이 주신 사명 중 하나인 전도는 그 모양새만 다를 뿐 행해지고 있다. 내가 섬기는 교회에서도 ‘예수사랑...’ 이라는 큰 제목으로 항상 이맘때면 진행되는 데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도 그 진행일 중에 하루다.

생각하기에 따라 전도는 쉬우면서도 어려운 거 같다. 쉬운 거란, 창조주 하나님을 알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며 교회에 나와 신앙생활을 하게 하는 것을 막연하게 알리는 것이고 쉬운 것을 온전히 하게 하는 것이 어려운 거라고 말하고 싶다.

즉 내 혀로 알리는 정도는 쉽게 할 수 있되 주님이 내 혀를 통해 실제 교회로 걸음을 옮긴 사람이 주님을 제대로 영접하게 하는 게 어렵다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고 싶은 게 있다.

전도는 위 내용을 믿게 하되 그 대상이 더 정확하게 그리스도의 의미를 알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막연히 믿는 다거나 교회에 출석하는 정도로는 도무지 인간에게 발생되는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 된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이 쉽게 무너지고 변덕이 하루에도 수십 번 드는 것은 그 해결을 맛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며칠 전, 반 억지로 교회에 가자고 해서 갔던 한 청년이 한두 번 교회에서 얼굴을 보이다가 갑자기 사라져 소식이 없다가 나를 찾아왔다.

나는 그 청년을 보는 순간 너무 놀라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불과 삼사년 만에 확연히 달라져 돌아 온 그 청년은 달라진 이유를 내게 설명하면서 자신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거침없이 말했다.

함께 공을 차는 젊은 청년 중에, 세상을 소위 자신 임의대로 살던 친구가 얼마 전부터 교회의 새가족반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그의 형인 ○집사는 몇 년 전에 자신의 고민 중에 하나로 자신의 동생들 문제를 꺼낸 적이 있었는데 바로 그 동생 중 하나이다.

그 후 동생을 운동장으로 데리고 나온 그 집사는 참으로 주님이 좋아하신 일을 했던 것이다. 세상에 빠져 살던 동생을 공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교인들과 교제하게 하였고 그 결실을 맛보는 중인 것이다.

디모데후서 4장 2절 전반부에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에서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나 사람이 교회를 가던지 가지 않던지 어느 교회로 걸음을 향하던지 교인들과 함께 하는 것도 전도를 하라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본다.

실제로, 위의 짧은 글에도 잠깐 언급했다시피, 교회마다 그 실천 방안으로 이벤트를 통해 전도하는 것도 좋다고 할 수 있지만 행사를 통해 실제 주님을 영접하는 자는 그 비율이 현저히 낮다는 통계가 있다는 것을 볼 때 내가 거한 곳에서 나를 통해 전도되는 그 퍼센트가 오히려 아주 높은 퍼센트가 나온 다는 것을 알면 더욱 효과적인 전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에 교회에 등록한 한 학생과 공을 차고 난후 짜장면을 먹던 중에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런 취지의 말을 했다.

“너무 큰 교회는 자신의 존재가 미약하고 신앙의 성장이 더딘 편인데 이 규모의 교회는 좋은 거 같아요. 내가 살아있는 거 같고 관심도 받고 함께 교제하고 그래서 정착하기가 아주 좋은 거 같아요.”

나는 그 학생의 말에 속으로 환호했다. 바로 이 학생의 말이 현재 내가 섬기는 교회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니던가.
이 장점을 잘 활용하면 교회는 지금보다 발전하고 부흥할 것이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으로 직결된다는 환한 미래가 보이기 때문이다.

*****

현재까지의 글 내용은 크게 세 갈래의 분위기를 볼 수 있다. 첫째는 보통 교회에서 중직이상의 직분을 받은 사람들도 세상적인 문제 앞에 넘어져서 힘들어 하는 것과 둘째는 이런 저런 이유로 교회를 다니다가 완전히 세상에 빠졌다가 어떤 기회를 통해 다시 하나님을 만나는 것과 셋째는 교회를 다니면서 정착하게 되는 동기가 그것이다.

물론 모든 계획과 섭리는 주님이 하시는 일이기에 나를 포함한 인간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주님의 역사는 인간을 통해 보이고 이루어진다는 개념을 바탕에 깔면 그나마 말하는데 조금 편해진다고 본다.

믿지 않는 자들은 현재의 삶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 중에서 좋은 일은 그렇다 쳐도 안 좋은 일만큼은 팔자나 운명이라는 말로 이상스럽게도 잘 받아들이는 편이다.

예를 들면, 무능력한 부모를 만나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사람은 자신이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해 성공하지 못했다. 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잘할 수 있었는데 부모의 뒷받침이 부족해서. 라고 말하던지 아니면 이런 저런 나름대로 타당성을 제시하며 자신의 부족한 삶을 합리화나 정당화 시킨다.

아니면 나는 열심히 사는 데 주위 환경이나 사회가 나의 성공을 방해한다거나 그로 인해 직장이나 사업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심한 고뇌로 이어지면서 낙담과 절망으로 알코올이나 도박 등 사행성에 빠져서는 모든 게 남의 탓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때로는 사회적이나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들 중에서도 자신이나 가족 또는 주위에서 알게 모르게 일어나는 일들로 인해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도 있으며 원치 않는 알 수 없는 이런 저런 질병으로 지금도 신음하는 자들도 있다.

솔직히 지금의 나처럼 주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조차도 참된 평안이나 기쁨을 갖지 못하고 내 자신이 신앙생활을 하는 그 의미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내가 교회에서 하는 봉사하는 거에 비해 돌아오는 응답이 없음을 알고 신앙생활에 대한 회의를 느끼는 경우도 있다.

그로 인해 믿는 자들조차 중에서도 신비함을 쫓으며 기복적인 신앙관에 물든 자들은 영적인 능력이 있다는 목회자들을 찾아 떠돌아다닌다거나 교회를 옮기면서 옮기는 교회를 통해 자신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얻겠다는 어쩌면 위험한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도 있다.

믿는 자들이나 믿지 않는 자들이나 팔자와 운명은 분명히 있는 거 같다. 그것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선대로부터의 영향이나 현재 나의 성격이나 생활환경 등으로 이미 굳어져 있는 것이기에 전혀 무시할 수 없다고 본다.

나는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공부를 하지 못한 현재의 신앙 상태로 그것을 말할 때 아마도 이런 것이 영적인 문제이자 그 문제 속에 담긴 정답 즉 비밀을 아는 게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도출해 냈다.
짧은 소견, 아니 이것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데 그 도출된 것을 해결해 주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은 큰소리로 외칠 수 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처음부터 그런 어려운 문제를 주시지 않으셨다. 애석하게도 인간 스스로 그 복을 차버렸고 그로인해 현재까지 흘러왔듯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사랑하시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고 우린 예수님의 피로 모든 죄 사함을 받았으며 예수님만을 믿으면 모든 죄에서 해방된다는 기회를 받았다.

허나 인간 중에는 아직 예수님의 존재를 그저 타 종교의 우두머리정도로만 여긴다거나 마음이 약하고 의지가 약한 사람들이 뭔가 바라는 게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저차원적인 발언을 일삼으며 예수님의 고귀한 피를 모욕하고 있다.
어찌 그런 인간에게 참된 행복이 있겠는가...

*****

내가 섬기는 교회는 ‘예수사랑...’ 을 통해 바로 그런 사람들을 찾아 나선 것이다.

오늘도 주님을 알지 못해 영이 메마르고 죽어가며 육신의 질병으로 고통 하는 자들을 정상으로 돌리려 하는 것과 비록 교회는 다니고 있지만 아직도 형식에 치우치며 자신의 고집대로 사는 자들에게 정확하게 하나님이 우리를 살려 둔 목적을 알게 해 주는 것, 예수님을 믿는 것은 나의 부귀영화를 바라는 게 아니라 주님의 일과 영광을 위해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건강도 물질도 따라온다는 것을 알게 함이라는 것이다.

교회의 중직으로서 자신의 사정을 토로한 ○집사님도, 내게 질문했던 여러 젊은 성도들도, 내가 고자질했던 여러 성도들도, 어느 날 갑자기 주님의 참뜻을 알고 행함을 가진 그 청년과 형을 통해 교회를 다시 찾게 된 그 청년도, 이제 갓 교회에 등록한 그 학생도,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도, 이 글을 우연히 읽고 있을 미지의 사람들도 남의 문제가 나의 얘기란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전도를 할 때 자주 등장하는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을 믿어라, 교회로 오라’ 등 가볍고 상투적인 단문 속에는 그 뜻이 바다보다 산보다 깊고 높은 뜻이 담겨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그런 질문을 듣고 받을 때가 내게는 기회임을 알아야 한다.

※ 이 글을 통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전도의 사명을 열심히 감당하고 있는 내가 섬기는 교회의 모든 성도 분들에게 감사하는 바이고, 글 속에 문맥상 짧게나마 등장하는 성도 분들에게는 미안하게 생각하며 모든 이들을 통해 전도에 대한 열정을 내게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글 : 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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