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연 뒤 그리고 남는 것
"이 사람만 있으면
아무 것도 필요 없다고 생각 했는데
그 사람이 떠나 버렸다.
남은 나는, 사랑과 증오 속에서
발버둥 치며 괴로워했다.
하지만 그것조차
나를 구원해 주지는 못했다."
.........................................(작가 미상)
우연히 읽은 책에서 뽑아낸 글의 일부이다.
몇 번을 되풀이해서 읽어도 바다보다 깊고 넓은 문장이다.
위 글은 실연한 사람이 아니면 실연을 잘 아는 사람이 쓴 글일 것이다.
우리 또래는, 두어 번 이상의 사랑과 실연을 경험했을 그런 나이라고 짐작된다.
아니 지금도 사랑의 감정을 갖고 누군가를 대할 수도 아니면 이별을 두고 깊은 밤을 지새울 수도 있으리라는 예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사랑을 하면 세상이 온통 핑크빛이라고 여러 번 다른 글을 통해 말을 하였지만 실연에 대해선 아주 미미하게 올린 것 같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실연에 대해 나의 생각을 말하고자 한다.
실연(失戀)은,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즉 사랑이 실패했다.’ 와 ‘사랑을 잃었다.’ 라는 사전적 의미가 있다.
전자는,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어떤 사유로 완성되기 전에 깨진 것을 말하고 후자는, 둘 다 사랑을 품고 있었다가 둘 중에 누군가가 먼저 이별을 고했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온전하게 갖고 싶었던 것을 상대로 인해 못가지게 되었다는 말이다.
덧붙여 말하면,
사랑이 실패했다는 당사자 간의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고
사랑을 잃었다는 것은 내가 가지려 했던 것을 상대로 인해 일방적으로 놓쳤다란 뜻이다.
나는 실연의 정확한 의미를 전자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싶다.
왜냐면, 사랑에 실패하면 양 편 모두 진정한 아픔이 따라야 하는 데 후자는 발설자의 일방적 뱉음으로 이별을 당하는 자만이 아픔이 더 클 수 있기 때문이다.
고로 사랑했던 사이의 진정한 이별은 전자를 지칭한다고 생각하기에 나는 전자에 무게를 두고 이 글을 써 나갈 것이다.
여러 번 기술했다시피, 사랑의 감정은 자연 현상 중에 하나이다. 사랑의 감정은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나선다고 발로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인간이 있다.
그 중에 얼짱이나 몸짱 등 외연적인 자격이 뛰어난 자들만이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면 그렇지 못한 이들은 어찌하겠는가.
우연히 마주한 남과 여가 처음엔 약간의 관심이나 호감 등으로 시작했다가 차츰 상대를 알아가며 상대의 삶 깊숙이 파고 들어간다.
초반기엔 서로 희생이나 양보 배려 등으로 상대를 자신의 삶 중심에 놓고 저울질하다가 손을 잡고 키스를 하고 그 이상으로 발전하면서 초반과 다르게 약간의 안정기에 접어드는 데 신이 허락한 그 순간이 지나면서 남과 여는 확연히 다른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정서적인 사랑을 중요시 하는 여자들의 속성과 육체적인 사랑을 중요시 하는 남자들의 본능은 남과 여를 창조하신 전능자의 고유 권한이다.
우리 인간 중에는 가끔 전능자의 고유 권한을 월권해서 자신의 의지대로 사랑을 행하려 한다거나 전능자의 권한을 핑계 삼아 이성에게 접근을 하고 자신의 목적이 완성되면 언제 그랬냐 하듯 줄행랑을 치기도 한다.
진정한 사랑이든 진정한 실연이든 그것은 우리를 창조하신 이가 우리 생 중에 준비하고 계획한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토록 사랑했던 사이가 서로 이별을 앞에 두는 장면을 우리 스스로 그려보자.
여기서 장면이란 영화나 소설 속의 그 장면이 아니다. 실제 자신을 그 자리에 놓고 보자.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가 서로의 한쪽이 되어서 이별하려는 그 자리에 서보자는 것이다.
단언하건데,
여자는 믿었던 남자가 자신을 배신했을 때 즉 신뢰가 무너졌을 때 가장 단호하게 이별을 말할 것이다.
반대로 남자는 정복한 여자에게 여자의 육체의 향기를 느끼지 못할 때 그것을 말할 것이다.
가끔은 위와 반대의 현상도 있지만 위와 다른 이유로 서로에게 이별을 말하는 것은 사랑했던 사이가 아닌 즐기는 사이 즉 요즘 말로 엔조이 상대였다고 확실히 말하고 싶다.
혹여 오해가 있을 듯싶어 예전에 본인이 썼던 글 중에, 경계해야 할 사랑으로 루두스 사랑(Ludus Love)을 지칭한 적이 있다.
물론 그것도 사랑이라는 범주 안에 포함시켰지만 사랑은 사랑이되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이해하면 된다.
즉, 전능 하신 분이 남과 여에게 서로 다른 사랑의 속성과 본능을 주신 것은 그것으로 인해 진정한 하나의 사랑을 이루라는 메시지를 주신 것이지 그것을 사칭해 자신의 쾌락을 쫓으라는 것은 아닌 것이다.
상식적인 이야기를 해보겠다.
사랑을 하면,
남과 여는 일단 같이 있고 싶어진다. 여기서 같이 있고 싶다는 것은 자신에게 부족한 것. 즉 여자에게는 육체적 면, 남자에게는 정서적인 면을 상대 이성에게 받고 싶어 한다.
정서적인 면이 강한 여성은 남성에게 육체적인 면을 받고 육체적인 면이 강한 남성은 여성에게 정서적인 면을 받아서 서로 일체가 된다.
사랑하는 남녀가 사랑의 행위를 나눌 때의 그 꿈같은 시간을 기억하면 된다.
반대로 여자든 남자든 사랑하지 않는 존재와 사랑을 나누는 것을 상상해 보라.
그것이 성 희롱이나 성 폭력이 되고 강간이 되는 것이다.
부족한 육체적인 면을 갈구하던 여자가 사랑하지 않는 존재와의 관계를 하면
꿈같은 동산에서 희열을 느끼는 것과 다른 정신적 충격이라는 극과 극의 정신적 현상이 일어난다.
남자 또한 사랑하는 여자와의 관계와 돈을 지불하고 행하는 관계 후의 뒤는 그 가짐이 뚜렷하게 구별된다.
후에 진정한 사랑을 했던 사이가 이별을 하고 나면, 남자는 여자와의 꿈만 같았던 관계를 회상하고 여자는 남자와 나누었던 가슴의 교류를 생각하는 것이 그 예가 될 것이다.
인간에게 사랑은 절대적 가치이다. 인간의 목숨은 사랑과 동행하는 것이다. 실연 또한 사랑의 또 다른 바퀴 중 하나이다.
“이 사람만 있으면
아무 것도 필요 없다고 생각 했는데
그 사람이 떠나 버렸다.
남은 나는, 사랑과 증오 속에서
발버둥 치며 괴로워했다.
하지만 그것조차
나를 구원해 주지는 못했다.”
이 사람만 있으면 아무 것도 필요 없다고 생각 했는데 그 사람이 떠나 버렸고 떠난 이로 인해 너무 너무 괴로운 데 그 조차 나를 구원해 줄 수 없다는 것은 인간 자체의 참모습이고 진정한 사랑을 했던 사람의 가짐 그대로다.
실연 뒤 남는 것은 인간의 참모습이다. (백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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