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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잡문

사랑이 우리네 삶의 최우선이 되어야 하는 이유

by 백대현 2015. 7. 17.

사랑이 우리네 삶의 최우선이 되어야 하는 이유

 

 

사랑의 종류를 기술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내가 왜 그런 내용을 써 나가는지 대하여 궁금증을 표하는 사람들이 없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 내용을 궁금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네 보통 사람들은 '내가 왜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가?' 에도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나라는 사람에게 조금만 관심 있는 사람들은 나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쓴 글에 지루함을 참아 가며 읽었을 것이고, 또 다른 이들은 그저 친구가 올린 글이니 막연하게나마 읽어나가면서 사랑의 종류에 그런 것이 있었구나하는 작은 정보를 얻은 것에 만족 아닌 만족을 가졌을 것이다.

 

나는 예전에 이런 맥락의 말을 했었다.

 

"인간은 제각기 자신의 삶을 사는 데 있어서 나름대로 목표가 있다. 그 목표를 이루려면 필수적으로 꼭 필요한 것이 있는 데 그것은 주위의 도움, 즉 사랑이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사랑을 소재나 주제로 올린 글이 무수히 많다. 그것은 나처럼 포괄적 사랑은 아니지만 아무튼 사랑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가끔 자신이 성공했다고 자부하는 이들은 교만한 자신만의 잣대로 사랑 타령하는 이들을 얕잡아 보기도 한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처럼 말하는 사람은 위에서 잠깐 언급한 '내가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 에 역행하는 좀 더 심하게 말하자면 뭔가를 착각하고 사는 우스꽝스런 사람이다. 내가 지금 자신 있게 그들을 단정해서 몰아 부치는 것은, 내게 그 사실을 깨우쳐준 님의 힘을 빌려 나는 그들을 이겨 낼 수 있는 이론으로 무장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목회자 '릭 워렌(Rick Warren)' 은 자신의 저서 '목적이 이끄는 삶' 을 통해, "인간의 삶은 사랑에 관한 것이다." 라고 말했다. 즉, 인간에게 있어 물질적인 성공이나 성취보다는 사랑이 최우선되어야 하고 오히려 사랑 없이 이룬 것은 그 가치가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어쩌면 신앙인이 아닌 일반인에게는 상투적인 말이 되어 버린 성경의 "네 이웃을 사랑하라." 를 실천하는 목회자의 신분에서 말한 바가 포함되었더라도 나는 그것을 일반인의 입장에서도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랑이 왜 최우선되어야 하고 사랑 없이 이룬 것이 왜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일까?

 

드라마나 영화에서 단골 소재로 다루는 것이 있다.

성공에 대한 큰 야망을 가진 남자가 있는데 그에겐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 하지만 비록 사랑하는 여인이지만 그 여인의 가정은 빈한했다. 남자는 성공하기 전에는 여인과의 사랑을 열정으로 이겨나가지만 우연히 부잣집 외동딸을 알게 되면서 성공을 향한 기대감으로.... 너무 상투적인가?

 

세상에서 성공을 하려면 타인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무언가를 투자하여야 한다.

잠자는 시간을 줄여 공부를 해서 사자가 들어가는 관문을 통과하거나, 주일도 쉬지 않고 밤을 새워 돈 벌 궁리를 한다거나.

특히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를 하여 높은 관문을 통과했다거나 수많은 역경을 이겨낸 사업가는 매스컴의 표적이 되어 인터뷰 대상이 된다.

 

첫 번째 이야기의 남자는 처음엔 혼란스러워 할 것이다. 즉 사랑이냐 성공이냐? 를 말이다.

그러다 남자는 성공을 택하고 그럭저럭 화려한 시간을 보내다가 나중에는 구렁텅이에 빠지면서 다시금 사랑했던 여인을 초췌한 모습을 한 채 찾는다.

 

두 번째 예에서 나온 등장인물이 남들보다 높은 자리에 앉게 되면 두 부류로 나뉜다.

즉, 높은 자리를 이용하여 자신의 노력했던 과거를 보상받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과 아니면 자신처럼 어려운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부류로 말이다.

대개 전자의 사람이 많은 편인데 결과는?

 

나는 짧게 두 가지 예문을 통해 사랑이 왜 최우선시 되어야 하는 바를 말하기 위함이었다. 허나 아무리 읽어 봐도 설득력이 부족하고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거 같아서 내가 믿는 종교의 힘을 빌려 보충해야 할 것 같다. 부디 무신론자들이 자신만의 배움으로 편견을 갖지 않기를 기대한다.

 

일반인도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한 토막 이야기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시고 세상을 바라보니 너무 좋더라. 헌데 남자가 혼자 외로이 있는 것을 보고 그가 잠든 사이에 갈비 하나를 취해 여자를 만들었다. 행복이 충만한 둘 사이에 긴 동물이 여자를 현혹하여 여자는 죄를 짓고 그로 하여금 창조주의 죄를 받아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의 고통과 역경의 길로 들어선다.

 

이후에 하나님은 고통 받고 사는 인간을 위해 구원의 손길을 주신다. 되풀이되는 구원에서도 우리 인간은 하나님에게 동일한 죄를 반복해서 지었고 그것이 현재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똑똑한 친구들은 그런 내게 이렇게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너도 같은 인간인데 이런 이야기를 주제로 해서 자신 있게 말을 할 수 있는 겨?"

 

물론 나도 인간이기에 다를 게 없음은 인정한다. 하지만 같은 인간이라도 구원을 받은 내가 말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말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거 같아 질문한 친구의 말을 여기선 무시하려 한다.

 

하나님은 세상 만물 뿐 아니라 모든 인간을 창조 하셨다.

수많은 인간을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수로 같은 인간을 두 개는 만드시지 않으셨다.

여기서 같은 인간 또는 똑같다고 말하는 것은 생김 뿐 아니라 성격(性格), 자질(資質), 능력(能力) 등 모든 걸 일컫는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하나님의 눈에는 다 같은 수준의 인간인데 인간들 사이에선 그 다른 점을 우열로 여긴다는 것이다.

 

이해가 빠른 사람들은 여기서 한 가지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리라.

즉, 인간은 다 거기서 거기다. 좀 잘났다고 뻐기지 말고 돈 있다고 거들먹거리지 말며 외모가 상대적으로 아름답다고 자랑할 거리가 못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 끄덕이는 김에 한 가지만 더 알아두기 바란다.

다 거기서 거긴 인간은 그 우열을 가지고 꼭 행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사랑이다.

잘났든 못났든 인간은 사랑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

 

위에서 두 가지 예를 들었던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자질을 가진 인간 중의 하나로서 인간의 우열의 어느 단계에 서 있을 뿐 특별한 게 없다. 단지 어느 단계에 내 자신이 서있든 사랑은 멈추지 않아야 하며 지금도 실천하여야 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이 말 대로라면 사랑은 잘난 인간만이 멋진 사랑을 누리는 전유물이 아니다. 모든 인간이 행해야 할 의무인 것이다.

사랑에 그 종류가 수없이 많은 것은 인간이 제각기 다른 거와 같이 사랑을 행하는 방법도 달리 하라는 하나님의 메시지다.

그 하나님의 메시지가 초두에서 말한 '내가 왜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가?' 의 답이다.

바꾸어 말하면, '내가 왜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가?' 는 서로 관계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내 자신이 죽어 갈 때, 나의 옆에 누가 있는 지를 상상해 보자.

첫 이야기의 남자에겐 부잣집 외동딸이 있겠는가? 아니다. 구렁텅이에서 건져준 가난하지만 자신을 아껴주던 여인이 울어 주고 있지 않을까?

공부를 잘해서 판검사 의사로 살던 사람도 죽어 갈 땐 그 사자가 지켜주는 것이 아니다. 단지 과거의 판사 아무개로 남겨 질뿐이다.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만이 끝까지 가는 길을 봐 줄 것이다.

즉, 돈이나 명예나 권력이나 그것을 하나님이 주신대로 남에게 사랑으로 베풀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행한 자에겐 그의 죽음의 다음 길은 뻔 한 것일 테고, 겸손하게 내가 받은 것을 남에게 사랑으로 베푸는 자 또한 그 길은 훤하게 정해져 있다.

 

나는 비록 글 쓰는 재주가 없어 설득력이 떨어질지 모르지만 위에서 '릭 워렌(Rick Warren)' 님이 말한 바를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기에는 역부족임을 안다. 단지 그분의 저서를 통해 여기(?)와의 연관성을 갖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생각하기에 따라 ○○상의 만남은 그 질이 떨어질 수 있다.

세상 여기저기에서 서로 따로 살던 사람들이 모였으니 조직의 유대관계 등부터 여러 곳에서 초점이 맞지 않아 서로에게 본의 아니게 상처를 줄 수도 있고 감추어진 불미스런 일들도 있을 수 있다.

나는 내 가슴이 넓어 그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게 아니다. 단지 내가 믿는 분을 통해 나는 그런 진리를 조금이나마 터득했기에 지금 이야기하는 지도 모른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한 가지만 더 해 볼까 한다.

또래들이 모여 만든 모임이니 친구 사이라고 말한다. 나는 친구였던 남녀 사이가 좀 더 진보되어 애인이나 결혼도 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유부남 유부녀가 많은 관계로 도덕적, 사회적으로 문제가 야기될 수 도 있지만 그것은 인간의 참음으로 말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본다.

즉 여기의 목적에서도 말한 바대로 또래로서 서로의 삶에 힘이 되어 주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그리고 '내가 왜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가?' 이다.

 

목적이 그 방향대로 가다가 가끔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애인이나 결혼도 나올 수 있다. 그것은 여기 아닌 그 어디에서나 개연 될 수 있는 것이기에 누가 제어한다고 해서 우리가 원하는 방향만으로 갈 수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지금 여기 안에는 좋은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훨훨 나는 나비로 세상을 사는 이도 있고, 직장을 그만두고 담배 한 개비로 먼 하늘을 응시하는 사람도 있고, 낼 다가오는 공과금 카드 값 등으로 심란한 생각을 하는 이도 있고, 가족 중 누군가가 아파서 병원 신세로 한숨을 짓는 이도 있고, 늦은 나이에 인연을 만나지 못해 히스테리 속에 뭔가를 탓하는 사람도 있고, 또 누군가를 연모해서 술 한 잔으로 가슴을 달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랑은 그런 사람들끼리 나누는 신비의 약이다. 사랑을 누군가에게 받으면 잠시나마 그런 근심을 잊을 수가 있다. 그런 근심에서 영원히 벗어나려면 물론 하나님을 믿고 영생을 얻어야 하지만 그것은 너무 깊은 이야기니 여기선 그만 하고.

 

나누는 것이, 즉 사랑이 우리네 삶에 있어서 최우선이 되어야 하는 이유. 바로 그것이다. (백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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