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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잡문

풋내기 철학자

by 백대현 2015. 7. 17.

풋내기 철학자

 

 

새벽이 흐르고 있는데도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내겐 지금의 전쟁이 어쩌면 소중한 취미이자 행복이다.

 

“어제 어디 갔다 왔니?”

 

“어제? 전화... 했었구만?”

 

“그래. 여덟시 땡이 어딜 갔다 왔을 까아?”

 

마신 술로 눈이 약간 풀린 친구가 야릇한 미소로 물어왔다.

 

“차암내... 왜에? 난 좀 집에 늦게 들어가면 안 된다는 법이 있남?”

 

“너... 혹시.... 바람피우는 거 아냐??”

 

“바람?? 웃긴 놈이네 갑자기 웬 바람얘기야?”

 

“요즘 자주 늦는다며? 속일 사람을 속여라! 이놈아.”

 

“야, 내가 그럴 쨉이나 되면 좋겠다. 비싼 술 놓구 싱겁긴...”

 

“그럼? 정모? 아님 벙개?”

 

“고마해라잉!! 그게 집에 늦게 들어온 거 하구 뭔 상관인데??...”

 

“어쮸리! 부정 안하는 거보니 난 건 확실한가 보구만! 하하하.”

 

“넘겨 집지 마라? 그나저나 사이버 생활을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비결 좀 전수해주라.”

 

내게 사이버 생활을 알게 해준 친구는, 몇 년 동안을 쉬지 않고 지금도 즐기고(?) 있다.

 

“왜에? 그만두려고?”

 

“그건 아니구.....”

 

“아직 못 찾았구나? 아마 죽을 때까지도 못 찾을 꺼다. 마음을 비워. 좀 심하게 말하면 그냥 심심풀이 땅콩으로 해.”

 

“야아, 그럴 거 같으면 시작도 안했다!”

 

“너는 그 소심증과 완벽 하려는 척 하는 게 병이야. 니가 뭇 사람들을 위해 뭘 해주겠다고? 또 뭘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런 걸 바라는 건 아니지만 내 취미잖니... 끈기로 따지자면 니보다 내가 몇 수 위 인데 말야...”

 

“그건 그래. 인정한다. 근데 사이번 전에도 말했다시피 인스턴트 인연이야. 넌 아직도 청국장을 생각하지? 순진하긴...”

 

“하하하, 귀신은 귀신이네 그러잖아도 그걸 소재로 전에 짧게 올렸었다.”

 

“청국장 인연이라... 아마도 그것은... 사이버에선 어쩌면 불가능할 지도 몰라....”

 

친구의 불가능이란 말에 내 가슴이 왜 이리 시려지는 걸까.....

 

“그럼 하나 물어보자? ○○으로 만나서 사랑도 하구 결혼도 하구.. 좋은 친구도 될 수도 있잔어? 실제 있기도 할 걸?”

 

“물론이지..... 너 거기서 나올 거지?”

 

“갑자기 그게 뭔 말이야? 야, 당연히 언젠간 나오겠지?”

 

“그러겠지. 나온 뒤 그 반응을 쳐다 봐.”

 

“엥?”

 

“아마 니게 관심 있었던 사람들 중에서는 약간의 아쉬움으로 짧은 전화 정도는 해줄 지 모르겠다?”

 

“그거야 모임을 하다보면 관심의 비중에 따라 당연히 그러겠지?”

 

“그래 니 말이 맞다. 근데 아닌 게 있어, 사이버 속성 중에 이런 게 있다. 로그인 상태서는 친구나 인연이란 개념으로 서로를 절실히 대할 수 있지만 아웃 상태선 전혀 다른 세계로 돌아가는 거야. 냉혹할 정도의 반응으로....”

 

“그건 그래. 작년에도 그랬으니까.. 재작년에도 그랬던 거 같구. 까맣게 잊게 되더라구...”

 

“맞다. 알 수 없는 참 웃긴 일이야. 탈퇴한 상태로는 친구나 인연으로 갈 수 없는 게... 청국장 인연을 이루는 게 사이버에선 무척 힘든가봐. 나도 긴 시간을 통해 그것을 이해하게 된 거 같단다.”

 

“근데 이 번 만은 달라!!! 설령 내가 컴에서 나간다 해도 몇몇은 계속 가고 싶어...”

 

“하하하, 왜 좋은 사람 생겼니? 수상하네?”

 

“뭐라구? 그게 아니구 이번만은 다 좋다니깐... 진솔한 친구들이 많이 보여.. 근데....”

 

“기대하지 마라. 설령 어떤 감정으로도 니가 좋아하든 그 상대가 널 좋아한다고 하든... 아마도 그 상대는 니가 사라지면 또 다른 상대를 찾아 나설 거야.. 니도 그럴 것이구...”

 

“웃겨! 고수도 잘못 볼 수도 있고. 예외도 있는 법이다!”

 

“그럴까?.... 다들.. 그런 착각과 환상 속에서 허우적거리지.. 나만 예외일 거라 생각하는 거... 오직 나만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낄낄길”

 

“.......?”

 

“그거 있잖니? 편안한 대화, 새로운 친구 만들기인가? 드라이브 같이하기 또 뭐가 있더라...”

 

“그건 왜?”

 

“○○하는 의도나 목적 설정하는 거 있잔어?”

 

“근데??”

 

“이유를 크게 나누어 논거 잔아. 또 또래니 음악이나 문학으로 나누어서 비슷한 사람들끼리...”

 

“그거야 시간도 단축돼서 좋고 목적이 맞는 사람들끼리... 넓은 사이버 세계에서 말 그대로 쓸데없는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잔아...”

 

“그래.... 넌 또래라며?”

 

“그런데?”

 

“어쩌면 그것도 이상적일 수도 있어. 그 또래 모임 말야. 초등학교 동창 같은 기분도 가질 수 있구... 그저 편히 만나서 얘기하고 한잔하고 놀고.. 그리고 헤어지면 제자리로 가고. 근데 그럼 되는 걸 가지고. 넌 뭘 찾으려 하니깐. 스스로 공허해지고 절망하고 안 다가오는 그들 땜에 짜증내고 때려치우고 싶고... 다들 그런 가벼운 만남을 원해서 나오는 건데. 넌 그 이상을 가지려 하니 그럴 수밖에....”

 

“그런가?”

 

“자랑하기 위해 말한 게 아니구. 난 사이버 생활이 강산이 바뀌고 또 한 번 바뀔 찰나란다. 오래 하다 보니 이젠 말 그대로 나의 일상이 되어 버린 거 같아...”

 

“그래 그건 나도 알고 있는 바다.”

 

“물론 오래하고 있다는 건 생각하기에 따라 좋게 말할 수 있겠지. 근데 수명이 긴 게 오히려 그 깊이는 떨어져. 아마도 니처럼 집중력이 있는 사람에겐 어쩌면 서운하게 나 같은 사람이 보일지 모르겠다.”

 

“서운할 거 까진 없지. 내가 아무리 그래도 그런 거야 개인의 자유인데 하라 말라 함부로 제어할 순 없지..”

 

“바로 그거다! 사이버란 게 자신의 맘 내키는 대로 자율에 따라 하는 거니까. 이래라 저래라 명령할 순 없다는 것이야. 일단 제시만 하고 따라오면 하구 안오면 말구.. 그럼 오래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거야. 그런 사람들 대부분도 뭔가를 갈구하는 것이 있을 거다. 봐라, 남는 시간에 게임을 하기 위한 목적인 사람한테 말을 붙이면 뭐하구. 이성간의 야릇한 대화를 나누고 싶은 이에게 번뇌하는 이야기는 무엇이며. 그저 만나서 띵까띵까만 그리는 사람한테 삶이 무엇인가가 들리겠니? 너도 마찬가지지. 니도 니 취미상이든 직업상이든 접근하는 게 있잔어. 근데 못 얻었다고 해서 니 기분을 공개할 필요가 없다는 거야. 니가 공개해봤자 한번 보고 지나가는 먼지 같은 것이구. 아무도 그 이상은 관심이 없을 거다. 그냥 그 자체를 즐긴다거나. 즐기기 싫으면 나오면 돼.”

 

“참내... 넌 쉽게도 얘기한다.”

 

“신경 쓰지 말라구요! 하면 하는 대로. 안하면 안하는 대로... 지속적으로 하는 방법 알려 달라며? 그냥 넌 니가 속한 거기서 놀다가 싫증나거나 하기 싫으면 나와. 나온 널 위해 울어 줄 이 하나 없고 막을 권리도 없으니까.”

 

“어쨌든 이래라 저래라 자꾸 요구하지 말란 말이네? 그러고 보니 전 시삽도...”

 

“왜?”

 

“아니! 암튼 그런 게 있어.”

 

“그나저나 솔직히 말하시지?”

 

“뭐얼??”

 

“너 바람난 눈친데 말씀해 보시죠?”

 

“참내.. 아까 말했잔어 내가 그런 그릇이나 되겠냐구?”

 

“암튼 그것도 니 자유니 내가 뭐라 말하겠니? 하하하... 그나저나 너 같은 놈이 진짜 바람난다면 재미있을 텐데. 잘해라 내가 확 불어 버릴 수 있으니... 에궁.. 니 같은 놈 유혹하는 방법 그 사람한테 알려주고 한잔 얻어 먹구 싶다. 하하하...”

 

“쓰잘데 없는 소리 말구. 웃지도 말구 알려고도 하지 마라. 다치니깐... 그만 마실래?”

 

“그래! 출근하려면 좀 자야니깐...”

 

 

인간의 본질과 우주를 논한 옛 철학자들의 논리를 빌리지 않더라도 인간이 세상을 사는 방법은 제각기 다르다는 것은 나도 이미 알고 있다.

또한 친구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을 하는 목표나 목적도 각기 다를 수 있음도 너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이번 기회에 한 가지 꼭 알아두었으면 하고 바라는 게 있다.

 

그 유명한 철학자들...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한 소크라테스나 이상 국가론을 논한 플라톤, 목적론적 윤리설을 핀 아리스토텔레스 등도 고뇌하는 사색 뒤에 후세에 길이 남는 논리나 학설을 남길 수 있었음을...

또한 그들이 비록 그런 학설을 내놓았지만 행동에서만은 일반인들과 하등 다를 게 없었음을...

 

좀 더 작게 말하자면,

○○을 하는 데 있어서도 다들 그 목표와 목적이 다를 지라도 한 가지 공통분모는 있다.

게임을 하든, 드라이브를 하든, 아니면 이성을 만나든 그 어떤 것도 자율이 따르고 개인에게는 중요하지만 그것은 인간이 태어나서 죽음으로 떠날 때까지 진행되는 삶의 한 가지 작은 수단에 불과하다. 그 작은 수단이 인간의 가장 큰 목적. 인간관계의 중요성에 벗어나 이루어진다거나 무시된다면 지금 바람에 의해 나부끼는 저 휴지 조각처럼... 얼마나 가엽고 처량하리.... 로 갈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내가 친구의 말처럼 세상에서나 사이버에서나 쉽게 살지 못하고 만사를 깊게 여기는 단점이 없지 않아 있지만 나는 내 생각이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는 아직까지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페시미스트(pessimist)도 절대 아니다.

또한 친구의 말처럼, 내가 사라진 뒤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고 해도 나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

그러나 이것만은 무척 중요하다.

수많은 ○○ 인구 중에 우리가 만난 것은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백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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