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추기(思秋期) 2.
내게 예고 없이 내렸던 첫 눈이 다 녹아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날 저녁...
“...왜에 또 생각나나 부지?”
“......??”
멍하니 앉아 있을 때면 ××가 자주 물어오는 질문이다.
“보고 싶은가 보네? 근데 오늘은 첫사랑이야, 아니면 그 여자야?”
“또 심심한가 보구만...”
××는 가끔 내게 코드가 빗나가는 질문을 해서 나를 짜증스럽게 한다.
또 말싸움이 될까 싶어 외투를 입었다.
“산책하구 올게....그리고 한번만 더 일기장 보면 알아서 해!!”
××가 내게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은 일기장 때문이다.
아직도 내 사고 방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어차피 본 것을 어찌 할까.
일기장은, 나만의 일기장은 ××는 물론 날 낳아주신 어머니도 피가 섞인 형제들도 가까운 친구들도 안 봐야하는 나만의 이야기고 감추고 싶은 보물인데...
우습게 들리겠지만, 우리네 나이에 가장 큰 욕심은 사랑과 성공이란다.
그래서 나는 먼저 사랑이야기를, ×× 덕분(?)에 먼저 떠올리기 위해 황량한 겨울 공원을 걸었다.
우리 또래 누구에게나 있었을 그 첫사랑...
한창 공부할 시기에는 공부에게 밀리고, 일할 때는 일에 밀렸으며, 결혼 후에는 그 생활에 또 뒤로 밀리고 그저 가슴 한 쪽에 숨겨둔 채로 여태껏 지내오고 있지만 오래된 그 기억은 변함이 없고 잊혀지질 않아....
내가 더 나이가 들어서 언젠가는 지금처럼 썰렁해진 겨울 길을, 하얗게 변해버린 머리를, 늘어난 주름만 서로 바라보면서 그 사람과 얘기할 수 있다면...
내가 초등시절에 코를 흘리며 썼던, 사춘기시절 두근거리며 받았던 그녀의 편지로 우린 마냥 웃을 수 있을 거야...
그녀에게 내가 버림받은 것이 아니야. 내가 그녈 버린 거지...
준비가 안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어... 그저 기다려 달란 말밖에 못했을 뿐인데...
참 이상해... 여자들은... 표현해야만 사랑한다는 걸로 믿는...
남자들은 다른 데에서는 자신감이 넘치지만 오히려 사랑의 표현에 좀 서툴다는 것을 모르나?
...3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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