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단상잡문

사추기(思秋期) 2.

by 백대현 2015. 7. 23.

사추기(思秋期) 2.

 

 

 

 

내게 예고 없이 내렸던 첫 눈이 다 녹아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날 저녁...

 

“...왜에 또 생각나나 부지?”

 

“......??”

 

멍하니 앉아 있을 때면 ××가 자주 물어오는 질문이다.

 

“보고 싶은가 보네? 근데 오늘은 첫사랑이야, 아니면 그 여자야?”

 

“또 심심한가 보구만...”

 

××는 가끔 내게 코드가 빗나가는 질문을 해서 나를 짜증스럽게 한다.

또 말싸움이 될까 싶어 외투를 입었다.

 

“산책하구 올게....그리고 한번만 더 일기장 보면 알아서 해!!”

 

××가 내게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은 일기장 때문이다.

아직도 내 사고 방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어차피 본 것을 어찌 할까.

일기장은, 나만의 일기장은 ××는 물론 날 낳아주신 어머니도 피가 섞인 형제들도 가까운 친구들도 안 봐야하는 나만의 이야기고 감추고 싶은 보물인데...

 

우습게 들리겠지만, 우리네 나이에 가장 큰 욕심은 사랑과 성공이란다.

그래서 나는 먼저 사랑이야기를, ×× 덕분(?)에 먼저 떠올리기 위해 황량한 겨울 공원을 걸었다.

 

우리 또래 누구에게나 있었을 그 첫사랑...

 

한창 공부할 시기에는 공부에게 밀리고, 일할 때는 일에 밀렸으며, 결혼 후에는 그 생활에 또 뒤로 밀리고 그저 가슴 한 쪽에 숨겨둔 채로 여태껏 지내오고 있지만 오래된 그 기억은 변함이 없고 잊혀지질 않아....

 

내가 더 나이가 들어서 언젠가는 지금처럼 썰렁해진 겨울 길을, 하얗게 변해버린 머리를, 늘어난 주름만 서로 바라보면서 그 사람과 얘기할 수 있다면...

내가 초등시절에 코를 흘리며 썼던, 사춘기시절 두근거리며 받았던 그녀의 편지로 우린 마냥 웃을 수 있을 거야...

 

그녀에게 내가 버림받은 것이 아니야. 내가 그녈 버린 거지...

준비가 안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어... 그저 기다려 달란 말밖에 못했을 뿐인데...

참 이상해... 여자들은... 표현해야만 사랑한다는 걸로 믿는...

남자들은 다른 데에서는 자신감이 넘치지만 오히려 사랑의 표현에 좀 서툴다는 것을 모르나?

 

...3에 계속

'단상잡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추기(思秋期) e.  (0) 2015.07.23
사추기(思秋期) 3.  (0) 2015.07.23
사추기(思秋期) 1.  (0) 2015.07.23
이 공간에 거미줄이  (0) 2015.07.23
새롭게 일어나기를   (0) 2015.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