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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잡문

아무리 좋은 의견이라도

by 백대현 2015. 7. 23.

아무리 좋은 의견이라도



간은 사회적이자 합리적인 동물이라고 한다.
물론 어느 정도는 수용할 수 있는 말이지만
어떤 사안을 두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결코 그 말이 다 옳다고 말 할 수 없다.

어떤 주제를 놓고 토론(討論)이나 논쟁(論爭)을 하다보면
대부분 자기주장이 무조건 옳다고 한다.
특히 서로 다른 생각을 논하는 논쟁 속에 빠지다 보면
설령 상대편의 의견이 옳다 해도 어느새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고 포장하기 위해 무아지경으로까지 빠진다.

그 이유는 인간의 내면에는 패배에 대한 굴욕감이나
아집(我執), 편견(偏見) 등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많은 부정적 요소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로 논쟁 후에는 상대에 대한 악한 감정으로
논쟁 전 목표로 한 것은 다 날아가 버리고
오히려 그 잔재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다른 길로
가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 벌어진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신앙생활 속에서도
우린 그것을 자주 목격한다.
신앙을 한자로 표기하면
한자를 좋아하거나 그 깊은 뜻을 아는 사람은 그것을
쉽게 알 수 있는데
믿을 신(信)과 우러러볼, 의뢰할 앙(仰)을 쓴다.

신(信)자는 사람 인(人)에 말씀 언(言)자 를 써서
그 뜻을 그대로 읽으면 ‘사람이 말을 한다.’ 이지만
말씀 언(言)자의 뜻을 더 깊게 해석하면 그냥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잘못하면 죄를 짓는 다거나 그 죄로 혹독한
매를 맞는다. 란 뜻과 연결되어 있다.

토론이나 논쟁의 그 시작은 말이지만
말 즉 혀의 중요성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앙(仰)자가 사람 인(人)에 나 앙(卬)을 쓰는 것은
사람을 우러러 봐야한다는 뜻으로 해석되듯이
그것은 나 자신보단 상대를 우러러 봐야한다는
의미로도 직결된다.

정리해 보자.
신앙생활은 내가 믿는 존재를 내 혀로 시인하고
그 가르침을 굳게 믿어 행하고 따르는 것이다.
그 길에 동행하는 자들과 하나의 가르침을 가지고
함께 동역하며 나가야 하지만 우린 서로가 상대를 이기기 위해
그 하나의 가르침에 자신의 말로 방향을 포장하는 경우가 있다.

즉 아무리 좋은 의견이라도 함께하는데 방해하는 것은
특히 나의 의견으로 상대에게 우리가 믿는 존재를
떠나게 하는 것은 그 분으로 하여금 우리를
책망(責望)을 듣게 하는 결과가 나온다.

신앙생활에서도 사회생활에서도
논쟁 전에 인간적으로 친해져야 한다는 것은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고로 인간적인 신뢰가 바탕에 없을 때는
농담 한 마디 신앙에 관한 한 마디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글 : 백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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