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全力) 질주할 때
인간에게 돈(물질)은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대하는 방법이 틀리다.
같은 액수를 놓고도
그 크기가 상대적으로 다르게 다가오는 것은
어쩌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마음의
크기인 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말하면, 마음의 크기에 따라
돈을 쓰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도 개연할 수 있다.
먼저 세상 적으로 보자
내게는 아들이 하나있는데
나는 하나 뿐인 아들을 위해서는
돈의 크기와 상관없이 쓰는 데 있어
아직까지 주저함이 없다.
하지만 그 외에는 주저하는 편이다.
세상을 향해 눈을 돌려 가만히 살펴보면
나 뿐 아니라 보통사람들도
자신과 가까운 관계에서는 나와 하등
다를 게 없음을 보게 된다.
그렇다면 이젠 신앙적으로 보자
교회 공동체 속에는 여러 가지 이름의 헌금이 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 대한 표시로
우리는 각자 믿음대로 크기대로 그것을 행한다.
하지만 나는,
각자의 믿음대로 크기대로 올리는 헌금보단
형편대로 행하는 연보에 대한 생각이 더 깊다.
헌금과 연보의 차이를 우리 정도의 신앙인이면
대체로 이해할 것으로 보는 데
왜 나는 그 차이를 두고 있는 것일까...
나는 헌금보단 연보에 관심이 많다.
우리의 믿음대로 행하는 헌금을 두고는
인간들이 서로 왈가왈부할 수도 없고
또 진정 우리의 주님이 얼마나 기뻐하실 지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연보에 치중하는 마음은 내 자신에게
기쁨이 없으면 사랑이 없으면 행할 수 없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함께하는 성도들과 하는 한 끼의 식사 속에서
함께 뒹구는 성도들과 싸구려 음료수를 나누면서
삶이 지쳐 힘든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우린 서로 사랑을 나눌 수 있기 때문에
완벽하지 못한 우리 인간의
위선과 가식과 교만이 담길 수 헌금보단
오히려 하나님께서 더욱 미소 지을 수 있다는
나만의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가 각자의 마음에 따라 돈의 가치를 다르게 생각하듯
우리가 믿음의 크기에 따라 헌금을 하듯
그 틀 안에 사랑이 존재해야 한다는 필수가 따른다.
진정 사랑하는 관계가 되면 물질이란 것이
얼마나 무가치한 것인지 알게 된다는 것이다.
고로 지금은, 우리는 서로의 사랑을 키우는데
전력 질주할 때이다.
그런 우리들의 사랑의 마음이 성장하기를
우리의 주님께서는 지금도 바라보고 계실 것이다.
글 : 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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