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를 떠나신 이유
성경(참고 : 마가복음 8장 11~13절)을 읽다가
예수님의 의외(?)의 모습에서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힐난하며
시험도 하고 또 표적을 요구하자
예수님은 마음속으로 탄식하며
그들에게 아무 것도 행하지 않고 자리를 떠나십니다.’
위 내용을 보면서
내 머리를 스치는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신앙생활 즉 교회 내외에서 행하는
성도 간의 교제와 그런 성도들을 바라보는
목회자의 자세입니다.
외형적인 교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대화의 주제는
하나님과 예수님, 성령님 그리고 성경과 교회,
해당 목회자와 타 성도가 대부분입니다.
물론 제 자신도 예외는 아닙니다.
어떤 주제를 놓고 대화를 나눌 때는
중요한 가짐이 있어야 합니다.
즉 객관적인 내용과 주관적인 내용을
구분할 줄 아는 것입니다.
여기서 객관적이란, 이미 증명된 참을 말하는 것이고
주관적이란, 그 증명된 참에 대해
너와 내가 다른 관점으로 보는
나의 생각을 가리킨다고 보면 됩니다.
우리는 같은 진리를 믿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이라는 수천 년을 통해 증명된 참 진리를 놓고
내가 느낀 점이나 받은 은혜, 체험 등을 토대로
대화가 시작되지만 대화가 깊어지다 보면
이상스럽게도 너무도 다른 해석을 하면서
자신의 고집을 관철시키려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자아가 바위처럼 단단한 사람일수록
상대의 주관을 쉽게 인정하지 않습니다.
세상적 용어로 그것을 논쟁(論爭)이라고도 합니다.
그 구절에서 성경을 잘 아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원하는 것은 논쟁이었고 표적이었습니다.
그것도 하등 쓸데없는 논쟁거리와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만을 구한 경우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리석은 우리에게
가장 이해하기 쉬운 언어와 비유를 통해 가르침을 주셨건만
우리는 그들처럼 내 안에 이미 형성된 자아와
나만의 지식이나 경험 등을 토대로
진리의 말씀을 저울질하고 다른 해석을 하면서
쓸데없는 행위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목회자의 본분이
하나님 말씀을 깊고 넓게 공부하고 이해해서
가장 올바른 해석으로
성도 간 교제 중에 일어나는 그런 휴지조각 같은 논쟁에서
중심을 잡아 주고 안내해 주어야 하는
길잡이 역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길잡이가 성도 간 중심에 항상 있어야
다른 생각을 통해 서로 갈라지도록 역사하는
그들의 전략을 방어하고 이길 수 있다는 것이지요.
예수님이 그 자리를 떠난 이유는
참된 진리는 저 멀리 방치해 두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것만을 찾는 이들에게는
‘아무 것도 줄 수 없다’ 는 메시지라고 보이며
자리를 피하셔서 얼마나 마음을 아파하며 무엇을 하고 계실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위에서 기술했던 대로,
성도 간의 교제에서 불가피하게 벌어지는 다른 생각들이
참 진리보다 우선할 수 없습니다.
우린 서로 다른 생각을 참 진리 하나로 모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예수님께서 탄식하며 우리를 뒤로 하지 않고
우리 옆에서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실 거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께서
자리를 뜨게 하는 죄를 서로 범하지 말도록 노력합시다.
글 : hyun.
성경(참고 : 마가복음 8장 11~13절)을 읽다가
예수님의 의외(?)의 모습에서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힐난하며
시험도 하고 또 표적을 요구하자
예수님은 마음속으로 탄식하며
그들에게 아무 것도 행하지 않고 자리를 떠나십니다.’
위 내용을 보면서
내 머리를 스치는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신앙생활 즉 교회 내외에서 행하는
성도 간의 교제와 그런 성도들을 바라보는
목회자의 자세입니다.
외형적인 교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대화의 주제는
하나님과 예수님, 성령님 그리고 성경과 교회,
해당 목회자와 타 성도가 대부분입니다.
물론 제 자신도 예외는 아닙니다.
어떤 주제를 놓고 대화를 나눌 때는
중요한 가짐이 있어야 합니다.
즉 객관적인 내용과 주관적인 내용을
구분할 줄 아는 것입니다.
여기서 객관적이란, 이미 증명된 참을 말하는 것이고
주관적이란, 그 증명된 참에 대해
너와 내가 다른 관점으로 보는
나의 생각을 가리킨다고 보면 됩니다.
우리는 같은 진리를 믿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이라는 수천 년을 통해 증명된 참 진리를 놓고
내가 느낀 점이나 받은 은혜, 체험 등을 토대로
대화가 시작되지만 대화가 깊어지다 보면
이상스럽게도 너무도 다른 해석을 하면서
자신의 고집을 관철시키려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자아가 바위처럼 단단한 사람일수록
상대의 주관을 쉽게 인정하지 않습니다.
세상적 용어로 그것을 논쟁(論爭)이라고도 합니다.
그 구절에서 성경을 잘 아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원하는 것은 논쟁이었고 표적이었습니다.
그것도 하등 쓸데없는 논쟁거리와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만을 구한 경우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리석은 우리에게
가장 이해하기 쉬운 언어와 비유를 통해 가르침을 주셨건만
우리는 그들처럼 내 안에 이미 형성된 자아와
나만의 지식이나 경험 등을 토대로
진리의 말씀을 저울질하고 다른 해석을 하면서
쓸데없는 행위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목회자의 본분이
하나님 말씀을 깊고 넓게 공부하고 이해해서
가장 올바른 해석으로
성도 간 교제 중에 일어나는 그런 휴지조각 같은 논쟁에서
중심을 잡아 주고 안내해 주어야 하는
길잡이 역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길잡이가 성도 간 중심에 항상 있어야
다른 생각을 통해 서로 갈라지도록 역사하는
그들의 전략을 방어하고 이길 수 있다는 것이지요.
예수님이 그 자리를 떠난 이유는
참된 진리는 저 멀리 방치해 두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것만을 찾는 이들에게는
‘아무 것도 줄 수 없다’ 는 메시지라고 보이며
자리를 피하셔서 얼마나 마음을 아파하며 무엇을 하고 계실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위에서 기술했던 대로,
성도 간의 교제에서 불가피하게 벌어지는 다른 생각들이
참 진리보다 우선할 수 없습니다.
우린 서로 다른 생각을 참 진리 하나로 모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예수님께서 탄식하며 우리를 뒤로 하지 않고
우리 옆에서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실 거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께서
자리를 뜨게 하는 죄를 서로 범하지 말도록 노력합시다.
글 : 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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