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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잡문

요즘 일어난 안타까운 세태(世態)

by 백대현 2015. 8. 3.

헌신예배와 요즘 일어난 안타까운 세태(世態)



신예배를 드리고 나서, 장례식장에 갔다가 나오는 데 방권사님이 내게 진담과 농담을 섞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어찌 같은 백씨인데 둘의 성향이 그리 달라요?”

권사님이 내게 하신 말씀의 뉘앙스는 여기선 생략하겠지만 나로서는 말의 뜻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

4월 16일 일어난 ‘세월호 사고’ 는 나뿐 아니라 대한민국사람에게는 너나 할 것 없이 비통하기 그지없는 엄청난 재난이다.
누구의 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우리나라의 민족성이 여실히 드러난 총체적인 사고라고 보인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최고의 엘리트들의 행정 능력과 행태를 보면 일개 평범한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그 스트레스는 말로 표현할 수조차 없다.

개인적으로 조금만 더 공부를 했었다면 정치를 했었을 거라고 남들 앞에서 자신 있게 말하고, 최근에도 주위에서 권유를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질과 스펙에서 뒤진다는 열등감으로 인해 스스로 그 꿈을 포기한지는 오래다. 다만, 나만의 생각과 현실의 흐름을 이런 저런 공간을 통해 표현하는 것은 중단하지 않고 있다.

***

사고가 일어나 세상이 시끄러울 즈음에, 거래처 사람이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

“크리스천이시죠? 이번 일을 보고도 신이 있다거나 당신이 믿는 하나님이 있다고 말할 수 있나요?”

나는, 그런 소리를 들으면 보통 때 같았으면, 웃으면서 그를 설득하려는 어떠한 말을 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온, 오프 매체를 통해 힘이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그 답을 하기가 싫었다. 사실 기독교인이라 한들 이런 사고 앞에서 어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린 학생들을 그렇게 깊은 바다 속으로 버리(?)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해당 어린 자식들 부모들의 마음에 어떤 모습으로 들어오고 각인되겠는가.

***

그래서인지 20일 헌신예배는 내 마음 속에 없었다. 권사님이 내게 말했던 말씀의 분위기 즉 언행에서 철저한 준비의 중요성을 우선시하는 나로서는 담임목사님께 보고해서 연기할 까도 고민했다.

대형사고 앞에서, 시골에 묻혀사는 촌부가 뭘 할 수 있냐고 자신이 하는 일이나 제대로 하면 되지 하면서 말 많은 사람들은 얘기할 수 있겠지만 사람마다 시대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사는 방법이나 길이 다르니 그러느니 하며 넘어가는 것이 나을 것이다.

준비와 계획은 하고자하는 일에 대한 성패가 좌우된다. 철저함 속에서도 실제 상황에서는 다르게 연출되는 게 다반사인데. 준비 없이 즉흥적으로 하는 어떠한 일이 잘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물론 상황에 따라 대처하는 융통성은 예외입니다.) 하물며 준비 없는 헌신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내 자신 뿐만 아니라 내가 믿는 하나님께도 죄송할 따름이다.

헌신예배와 다른 줄기의 이야기지만, 사고가 터지고 나서야 이런 저런 원인을 밝힌 듯 무슨 의미가 있는가. 차디 찬 바닷물 속에서 죽어가는 어린 생명들이나 그 가족들만 원통하지.
사고가 일어나고 나서야 수습이라는 명목으로 뒷북치는 모습이나 피해 가족을 위한답시고 형식적인 발걸음을 해놓고 기념사진만 찍어대는 모습이나 참담함으로 울부짖는 가족들에게 좌성향이니 그 세력의 조종으로 그러느니 하면서 이간질을 일삼는 그 세력들이나...

세월호의 참상은 진실을 거슬러 올라가 넓은 안목으로 보면, 선장이나 선박회사 직원들도 죽어 간 사람들이나 남겨진 가족들과 같은 피해자에 불과하다.
경제를 위한답시고 법을 바꿔서 노후화된 선박을 수입했으면 거기에 마땅한 대책과 검사를 통해 철저한 예방에 온힘을 기울여야 하는데 법령을 바꾼 사람들이나 선박을 수입한 회사나 검사를 시행한 기관이나 선박이 운행하는데 있어 관리와 통제를 하는 모든 기관들의 무사안일과 탁상공론이 이런 참사를 일으킨 것이다.

세계의 많은 국가가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전체적인 시각은 그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세계 일류는 부르짖지만 겉모습으로는 호화찬란한 빛을 내면서 내부에서는 무능력하고 부패한 역한 냄새가 나는 현실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전년, 헌신예배 때 나는 국, 영, 수에 밀려 인문 소양을 등한시 하는 것을 개탄한 적이 있다. 성적 지상주의에서 오는 피폐는 점수를 올려 좋은 학교 좋은 직장으로 이어지고 그들이 최상위층을 자리하면서 개인 소양이 부족한 그런 자들이 정부의 요직을 차지하면서 오늘의 세월호 사고와 연장된다는 것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충분히 이어지지 않겠는가.

***

작년에도 기술했다시피 헌신(獻身)의 사전적 의미는, ‘몸과 마음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하다. 어떤 일이나 남을 위해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생각하지 않고 몸과 마음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하다.’ 란 뜻이다.

우리는 세상적인 헌신의미가 아닌 하나님의 일을 앞에 두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말하는 헌신의 의미는 '하나님의 일' 을 위해 헌신할 것을 결단하는 자리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한 정의라고 전년도와 같은 내용을 기술해 본다.
다만 이 정의를 세상에 적용해 보면, 대한민국 정부에서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 자세와도 직결되어야 하는 말이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하면서 세금으로 자신의 끼니를 연명한다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국민이 주었다는 것이다. 고로 마음은 국민을 위해 죽겠다는 헌신의 마인드는 기본인 것이다.
하지만 작태의 현실을 보면, 나라와 국민은커녕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나의 목숨을 이어가게 하는 국민을 얼마나 무시하고 있는가.(물론 여기서는 소수만을 의미합니다.)

***

금년도 주님 앞에 드리는 헌신예배의 주목적과 방향은, 작년에 ‘새로운 인물 즉 젊은 회원들이 주님께 결단하는 시간이나 자리를 만들어야겠다.’ 는 거였다면 ‘그들이 이젠 교회의 기둥으로 직접 나서는 것이다.’ 이었다.
실천의 한 방법으로 예배위원과 특송 뿐 아니라 예배 첫 순서인 찬양인도부터 그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부탁했다. 다행히 임원과 부장 위주로 무사히 진행했다고 본다.

광고시간을 통해 전한 메시지는 작년과 비슷한 내용이었다. 다만 작년과 다른 것은 좀 예민해져 있는 나로서는 약간의 노골적인 표현을 쓴 것이었다. 즉 남전도회 개인의 신앙은 스스로 자립할 수 없다. 하나님의 선택과 도움과 교회의 어른들의 배려와 가정에서 아내들의 협조가 없이는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말했다.

아무리 교회에서 기도를 많이 하고 봉사나 헌금을 많이 한다 해도 참된 믿음이 아닌 타인에게 보이기 위함이거나 순간적인 열정으로 하다 중단하는 것 보단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해도 스스로 나설 때까지 기다려야 하며, 지금은 자리 뒤편에서 조용히 예배를 드리다 돌아가는 성도에게도 감사로 여겨야 한다는 것을 다른 예를 들어가면서 모든 성도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즉 그들이 지금의 헌신예배를 통해 새로운 결단을 작정하는 것처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부족한 우리에게 헌신예배를 허락하여 주신 주님께 가장 먼저 감사드리고 귀한 말씀으로 남전도회 회원들에게 그 중심을 알게 해 주신 담임목사님께도 감사드린다. 또한 귀한 헌금으로 모든 남전도회 회원과 함께 예배들 드린 모든 성도님과 이런 저런 모양으로 헌신예배 순서를 맡아 준 회원 분들께도 회장으로서 이 지면을 통해 감사를 전하는 바이다.

 

※ 금번 사고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 슬픔에 젖여있는 분들과 설령 살아 돌아왔다 하더라도 이미 마음이 다쳐 지금도 괴로워하는 분들과 이런 저런 모양새로 그들을 위로하고 봉사하는 분들에게 위로와 감사를 표합니다.   

                                                                                                            2014년 남전도회 회장 백대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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