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져 갈 인연
김종환의 '버려진 약속' 이란 곡이 있다.
어떤 친구가 내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저절로 외워지겠다고 말할 정도로 자주 듣는 노래 중 하나다. 이 곡을 왜 자주 듣느냐고? 글쎄?
봄이 되면, 산과 들에 꽃들이 핀다. 우리 눈은 그런 각양각색(各樣各色)의 꽃을 보면서 즐거움과 기쁨으로 그 시간을 만끽한다. 하지만 우리 눈에 보이는 화려한 꽃들은 - 그 순간부터 서서히 죽어 가는 길에 있다. - 는 것을 알고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꽃을 어루만져 주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너 아니?
활짝 핀 저 벚꽃이 전년에 폈던 그 꽃잎이 아니란 것을,
개나리나 철쭉의 노랑 또는 분홍 빛깔이 작년에 내가 봤던 그 잎의 색이 아님을,
하지만 우리 눈은 같은 반응을 하지.
세상에 생명이 있는 것은, 지금 보이는 저 꽃들처럼 어쩌면 모두 같다고 볼 수 있다.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저 꽃을 보며 마냥 즐거워하지만 저 꽃이 시들어가는 것처럼 자신의 생명도 스러져 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꽃과 하등 다를 게 없는 인간,
내가 죽어 흙이 되더라도 나의 후손이나 다른 인간은 이 자리에 똑같이 서서 내가 저 꽃을 보며 즐거워했던 것처럼 - 당연히 보이는 저 꽃도 또 다른 얼굴로 그들 앞에 설 것이다. - 풍류(風流)를 즐길 것이다.
너 아니?
누군가는, 길가를 걷다가 하찮은 미물을 보고 고리타분한 의미를 부여하고, 어떤 이유로 만나든 그 인연을 존중해 보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너는 나와 같은 시기에 사는 사람인데 너는 누구며 어떻게 살고 있니?
너는 어디서 와서 어떻게 성장했으며 연애와 결혼은 언제 했고 아이는 몇 명 두었으며 남편은 어떤 일을 하고 아내는 무엇을 하고 있니? 그리고 어떤 말 못 할 사연이나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니?
너 아니?
지금 네가 선 곳에서 눈동자를 잠깐 옮겨보렴.
길을 걷는 사람들, 각자 자신의 길을 가고 있지.
권력과 명예를 갖기 위해 분주하게 발을 옮기는 사람들.
고급 음식과 남보다 큰 차를 타기 위해 돈을 찾아 나선 사람들.
그래, 사는 동안 남보다 앞서거나 나은 삶을 사는 사람을 우린 성공한 사람이라 하고 칭송도 하지.
하지만 그들도 보통 사람처럼 잠을 자야 생명을 유지하고, 하루 세끼 먹어야 걸을 수 있으니 별다를 게 없는 미물(微物)에 불과하단다. 왜냐고? 위에서 말했잖아. 아무리 발버둥 쳐도 우리 인생은 약간의 우열(優劣)은 있을지언정 지금 우리에게 보이는 저 꽃잎과 별로 다를 게 없거든.
너 아니?
지금 네가 알고 있는 사람들의 이름들,
만약 그 이름 중에 어느 날 갑자기 하나가 빠진다면?
너 아쉬워할 거야? 아니면 있든 없는 상관하지 않을 거야?
이 또한 만약인데 네가 본의 아니게 빠졌을 때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하지 않니?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렴.
‘밤이면 너를 생각해 몸이 아주 약했던 너를
조금만 걸어도 힘이 든다고 나에게 업히곤 했지
이제는 너는 떠났고 다시는 찾을 수 없네
파도가 밀려왔다가 내 발을 적셔 놓고 가버렸네
가슴에 꽂혀진 이별의 칼은 어둠 속에서 울고 있는데
우리가 걸었던 그 길을 다시 이렇게 걸어보네
너의 창에 이제는 다시 불이 켜지진 않겠지
이제는 잊어야만할 사람 버려진 우리의 약속’
떠난 사람과 함께 했던 곳을 갔어.
그런데 들어오고 나가는 파도나 거닐던 길은 그대로인데
모든 게 예전과 달라진 게 없는 데 님만 없데?
지금 아파하는 이 사람 앞에 가버린 그 사람이 돌아올까?
지금 바람과 손잡고 걷고 있지.
권력도 명예도 부귀도 그 어떤 것도, 이 바람보다도 못하다는 것을 알고
인간의 삶에 무시할 수 없는 것들 글, 그림, 노래 등에서 사랑이 왜 단골 메뉴인지, 사랑하는 사람이 왜 중요한지,
동시대 함께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왜 중요한지, 사소한 이런 질문이 인생의 진리 중에 하나라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멀어져 갈 나만의 인연의 이름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보렴.
(백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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