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단상잡문

사랑하려면 용기가 필요해

by 백대현 2015. 7. 17.

사랑하려면 용기가 필요해

 

 

모든 글의 시작과 끝이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끝을 맺는 내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이, 자넨 사랑의 프로인가? 사랑에 대해 그리 자신 있게 말하는 것 보니 혹시 제비, 아니면 바람둥이?”

 

“푸하하~~ 에잉! 그럴 리가? 키높이 구두를 신어야 일백칠십이 간신히 넘고 몸무게 육십오 키로짜리. 뭔 뽄대가 있다고 뭇 여성들이 붙겠나? 안 그래? 단지 취미 삼아 연구하는 나만의 이론뿐이징. 여보게, 세상은 어설픈 가짜가 판치는 것을 모르나?” 하며 대답할 것이다. 다만 행동에 앞선 이론은 무척 중요한 것이니 누가 듣든지 말든지 나는 나만의 얕은 철학을 자판을 통해 이야기할 뿐이다.

 

모 친구가 내게 이런 내용을 물어왔다.

 

“결혼도 하였고 애도 있는 입장에서 자신의 반려자가 아닌 다른 이성을 좋아하는 감정이 생겼다면?”

 

나는 일단 그에게 발로(發露)한 그 감정을 진실로 축하한다고 먼저 말을 해주었다. 물론 그 친구는 그런 생각과 감정이 축하받을 일이냐고 의아해 했지만 분명히 받을 일이라고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강조해 주고 싶다.

 

여기서 또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은, 어설픈 종교적 논리를 가지고 내게 이렇게 말을 할 것이다.

 

“어이, 자네 기독교 신자로써 그리 말해도 되나? 자네가 절대적으로 믿는 그 분께선 십계명을 통해 하신 말씀이 있을 텐데?”

 

“뭐야? 설마 간음하지 말라는 제 칠 번째 명을 가지고 따지고 들겠다는 거니??”

 

사실 임자 있는 사람이 다른 이성을 연모하는 건, 흔히 도덕적, 사회적인 측면에서 보면 마땅히 지탄을 받을 거리다. 하지만 예전에 내가 이미 썼던 ‘나의 바람끼’ 에서 기술했던 대로 사랑이 결부되면 이야기가 다르다.

 

다시 한 번 상식적인 예를 들어볼까?

 

남녀가 제 각기 살다가 성인이 되서 만나 사귀다가 결혼을 한다. 결혼을 결정할 땐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것은 사랑이다. 헌데 살다보니 사랑의 감정이 식어 이혼도 하고 원수보다도 더 멀어지는 사이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나처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나 보통 사람이나 다 같은 이치다.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남녀가 사랑해서 만나 좋은 가정을 이루고 살라는 건 하나님의 말씀이다. 물론 그 사랑 안에는 이성에 대한 성적인 욕구나 기타 감정 등 모든 사랑의 행위가 포함 된 것이다. 하지만 사랑의 감정은 변화무쌍한 것이기에 살다가 변화가 올 수 있다.

여기서 사랑의 변화란, 내게 더 좋은, 내게 더 맞는 사랑을 갈구하는 인간의 감정이다. 그것이 요즘 세상엔 불륜(不倫)이나 간통(姦通) 등으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조차 그 죄는 용서한 적이 있다. 물론 그렇다고 막 나가라는 것이 아니니 오해 말기 바란다.

 

나는 그 친구에게 자신감을 가지고 상대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라고 했다.

불륜은 말 그대로 윤리에서 어긋나는 것이지만 아무튼 가슴에서 피어난 사랑의 감정을 인간의 윤리를 대입해서 죄인이라고 말한다면 그렇게 말하는 자신에게 반문(反問)해 보라.

 

네가 결혼 한 사람이라고 해서

네가 자식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것을 감추며 산다는 것은 오히려 더 불행해 질 수 있음을 나는 덧붙여 말해주었다.

 

사랑이 시작되면,

그 상대가 어떠한 위치에 있거나 임자의 유무는 하등 관계없이 가슴 한 쪽에는, 시림과 아픔과 또 갈증과 아쉬움 등이 다른 쪽에서는 기쁨과 희망 등 즐거움의 감정이 반복해서 변덕스럽게 교차된다.

그런 감정은 지우개로 지운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연 현상 중의 하나라고 말 할 수 있다.

(좀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순리를 역행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가?)

 

지금 내가 가진 사랑이 나의 결정적 사랑이 아닌 거 같다는 나만의 생각이나, 더 나은 사랑을 갈망(渴望)하는 것은, 인간의 욕구이고 자연 현상이다.

인간의 욕구이자 자연 현상이, 어설픈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고정관념과 제도와 눈이나 시대적 흐름 등에 얽매여 감추어져 있는 것 보단 수면위로 올라와서 긍정적으로 풀려야 한다는 것이다.

고로, 누구든지 품고 있을 그런 맘을 현실에 의해 또는 남들의 눈을 의식해서 감추며 사는 것은 어쩌면 우유부단하고 용기 없는 자들의 일반적인 행태(行態)인 것이다.

 

생각과 가슴을 열고 하늘을 보라.

누가 내게 물어왔던 친구의 마음을 욕할 수 있겠는가?

네가? 아니면 네가?

욕하는 너희는 지금 자신의 가슴을 몇 겹의 옷감으로 가리고 있다고 안보일 거 같은가?

욕하는 너희도 지금 그런 꿈을 꾸기에 어쩌면 거기에 서있는 것이 아닌가?

 

친구의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 내용이다.

 

“친구야,

남과 여는 결혼을 하지. 남자는 자신의 욕구를, 여자는 사랑의 완성이 결혼이라는 서로의 본능과 꿈을 사랑이란 이름으로 예쁘게 포장해서 말이야...

근데 보통 사람들은 자신들이 품고 있는 것에 대한 종착점이 지금 앞에 있는 사람이 이루어 줄 수 없음을 또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건 결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아...

다행히 지금의 상대에게 눈을 감을 때까지 그 사랑이 변치 않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이상적이지만 말이야.

 

또 네 질문의 정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이성을 사모하는 건, 너만의 권리이고 책임이야.

허나 너만의 권리라고 해서 그것을 다 가지진 못해. 그래서 사랑은 아픈 게 아니겠니?

다만 말이다. 상대를 향한 맘이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전부보다 더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면 그걸 권리로 행사(行使)를 해. 그 권리는 모든 것을 박차고 나갈 수 있는 용기로 써 먹을 수 있다는 것이지 ...

하지만 친구야, 너는 주저하게 될 지도 몰라.

현재의 사랑, 즉 현재 내가 가진 전부와 다른 이성을 연모하는 마음 사이에서 말이야.

 

내 말이 혼란스럽지?

현재의 나의 위치나 반려자, 자식, 다른 가족의 눈, 사회적인 통념(通念) 등에서 수월하게 벗어나 다른 이성에 대한 사랑으로 두 발을 온전히 옮기기엔 어쩌면 내 발에 걸린 게 너무 많을 거다

 

그렇다면 판단은 이렇게 해보렴,

세상을 봐, 가끔 세인(世人)의 눈총을 받는 남녀가 나오지? 어쩌면 그들은 더 솔직하고 용기 있는 사람들일 수도 있어.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인데, 네가 품고 있는 사랑 네 권리를 네 자신이 책임 질 수 있다면 지금 제대로 표현해 내서 네 삶에 기쁨으로 가졌으면 좋겠다.

 

친구야 반복해서 말한다.

용기를 내렴.

안타깝게도 사랑은, 용기 있는 사람들만의 전유물(專有物)이란다.

우리네 보통 사람들은 진정한 사랑을 앞에 두고도 주저하고 우유부단(優柔不斷)하다가 자신의 이마엔 주름이 하나 둘 늘어가는 것을 본다. 주름이 자신의 얼굴에 더 이상 자리가 없을 때 숨은 멈추게 되고 그렇게 한번뿐인 생은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지...”

 

※ ‘사랑은 용기 있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이란 말은 순전히 저의 생각입니다. 고로 제 생각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백대현)

 

 

 

'단상잡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이 무너질 때의 증상  (0) 2015.07.17
사랑과 哲學(思索)  (0) 2015.07.17
어느 모래 이야기 (2)  (0) 2015.07.16
어느 모래 이야기 (1)  (0) 2015.07.16
환상(幻想) (2)  (0) 2015.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