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수다 속에서 5
가봐야 하는 거 아녀여?
어딜?
한 서너 주 못 본거 같은디 그래도 가봐야지. 머언 일이 있는 지 알아야 할 거 아녀어?
그럼 시간 되면 그대가 가봐아...
뭔 소리여. 그래도 응응(?) 한 사람이 가봐야지.
내가 가야 할 이유가 그것이라 그런 겨?
아니,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응응이 가봐야 된다는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려.
가보고 싶으면 또래들한테 연락해서 시간되는 사람들끼리 가봐.
올라리? 넘 무신경이네? 그럼 섭섭하게 생각할텐디?
피히히, 그럴 리가 있나?
오잉? 그 자신감은 뭐래?
자신감이 아니여. 그냥 냅둬도 될 거 같은 감이 있어.
흐메. 조직이 틀리다고 그럼 안되쥐이?
그냥 놔둬 봐.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그럴 건데...
이유? 뭔 이유? 그니까 가보잔 말이쥐이.
글쎄, 내 짐작이 맞다면 곧 다시 보일 거야. 그대나 나나 그저 틈나는 대로 기도만 하면 되는 것이야.
글쎄 그럴까. 암튼 몇 주 안 보이는데 뭔 일인지 궁금한디.
그래. 나도 궁금하긴 해.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일거야...
하나님의 사랑? 에이, 그래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주일에는 교회를 나와야 하는 거 아녀?
그렇지. 그럼 아주 이상적이지. 헌데 교회를 나오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교회를 나오지 않는 사람들도 사랑한다. 아마 제대로 교회를 나오는 사람들보다 더욱 사랑할 지도 몰라.
하나님은 교회 잘 나오고 기도 많이 하고 봉사도 많이 하고 헌금도 잘하는 사람들을 더욱 사랑할거라고 보는데?
물론이라니깐. 하지만 하나님은 지금 방황하는 사람을 우리들 보다 더욱 크게 쓰기위해 계획과 작전을 궁리 하실거란 말이다. 아니 이미 정하셨을 거얌.
그럼 그에게도 그럴 거란 말이네.
우린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없자노. 어찌 우리 인간의 머리로 하나님의 섭리를 알 수 있겠니. 암튼 하나님은 지극히 인간적인 삶을 통해 우리를 역사하는 것은 틀림없어. 단지 아쉽다는 건...
뭘? 뭐가 아쉽다는 것이야?
자네도 교회를 정상적으로 나오는 계기가 있었잖아. 대부분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계기가 있어.
긍께. 예를 들면, 하던 사업이 부도가 났다거나 큰 병에 걸렸다거나 자신에게 어떤 안 좋은 일이 닥쳤을 때를 말하는 것이제?
오우! 맞어. 우리 인간들은 참으로 어리석지. 하나님은 기다리다 기다리다 어떤 인간이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으면 그런 것으로 변화를 주시지.
대부분 다 그런 거 같어. 밋밋할수록 들어오질 않지.
이해가 빠르넴. 바로 그것이야.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구태여 그런 고난과 역경을 주고 싶어 하시진 않아. 다만 우리 인간 각자가 무지하고 어리석기 때문에 스스로 그 구렁텅이에 빠지고서야 그걸 이해하게 되지. 나중에 그게 간증거리가 되는 것이지.
설마 그런 어려움 없이 하나님께 갈 수 있을 가 싶어.
암암, 어렵겠지. 허나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건 그런 어려움이 닥쳐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거 보단 다른 사람의 간증에서 또는 보고 얼른 알아차리고 나오는 사람을 더욱 사랑할 거란 생각이 들어.
그 말은 내 자신에게 하나님이 어떤 계획이 펼쳐지기 전에 알아서 하나님 앞에 고개를 숙이는 게 하나님도 좋고 나도 좋다는 말이네?
올라? 생각보다 엄청 이해가 빠르네? 말 나온 김에 하나 물어보자. 그댄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진정 원하는 신앙생활이라고 보남?
내가 그런 걸 어찌 아노... 그냥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되는 것이지.
어휴, 그거야 말이 필요 없는 원론적인 이야기고.
그런 거 아녀? 하나님 말씀 즉 성경대로 살고자 노력하는 거. 물론 잘 안돼서 힘들긴 하지만...
하긴 그래, 성경대로 사는 게 가장 하나님이 원하시는 우리 인간들의 삶일 것이야...
다른 하고픈 말이 있는 거 같은디?
나는 말이다. 요즘 들어와서 자꾸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게 있단다. 어찌 보면 아주 예민한 부분이라 말하기가 좀 힘든 건데...
뭔데? 그리 뜸을 들여?
성경은 보면 볼수록,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많은 비유를 통해 깨달음을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그 비유가 아주 인간적이고 평범하다는 것이야. 우리가 익히 배운, 신앙인들은 예수님처럼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실제적으로 보면 아주 상식적이고 쉽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살아 생전에 지극히 인간적인 것을 많이 보이셨지.
에힝,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해 이토록 인생이 버거운 것인데. 너무 인간적인 삶을 살면... 암튼 예수님의 삶과 우리의 삶은 다르겠지.
나도 그 부분이 좀 이해가 덜 되고 정리가 안 되는 부분이야. 왜 예수님의 삶은 지극히 인간적인 면이 많았던 걸까...
예를 들면?
봐라, 우리말대로 영적인 사람들을 보면, 지극히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을 일컫는 것일 거야.
당연하지!
그런 영적인 사람들이란 교회 생활이든 모든 신앙적인 부분에서 모범을 보이는 거야.
당근 말밥이지!
근데 소위 그들이 다른 성도를 정죄한다거나 혀로 다른 성도를 시험을 주거나 낙담하게 만들거나 실족하게 만들면?
그것은 영적인 신앙인이라 볼 수 없겠지?
오호! 바로 그 말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이 오히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역행하는 것이잖아.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겸손하당께.
그럼 얘기가 어떻게 되는 거얌?
가장 인간적인 삶이, 가장 인간대로 사는 삶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적인 사람이 된다는 말이 나오는 거지.
영적일수록 더욱 인간적이어야 한다는 말인데...
봐라, 만약 지금 교회를 몇 주 안 나오는 친구에게 영적인 사람들은 그럴 거야. 어려운 일이 있을수록 교회에 나와서 말씀 듣고 기도하고 교제하고 그래야 된다. 이렇게.
맞는 말이자노?
우쉬. 틀리다는 말이 아니고.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도 그에게 지금의 시간과 그것을 허용했는데 우린 그 하나님 말씀이라는 이유로 그를 교회로 나오게 하는 거잖아.
긍께, 맞는 말이지!!
하나님이 말이다. 음.. 이런 비유가 있다. 어느 아버지에게 아들이 둘이 있는 데 아들 하나에게 얘야, 나가서 일 좀 해라. 하니깐 그 아들이 싫어요. 일하기 싫어요. 했데. 또 한 아들에게 똑같이 일 좀 해라 지시하니께 그 아들은 예쓰 했다네!
근데?!
정작 노했던 아들은 나중에 반성하고 나가서 일하고. 정작 예쓰했던 아들은 일을 하지 안했다네.
그럼 뭐얌?
뭐긴 뭐야. 중요한 건 아버지를 하나님이라 여긴다면 노하고 대답했다가 반성하고 일한 아들이 하나님 앞에선 넵 하고 일하러 가지 않은 아들보다 낫다는 말이지.
그러니깐, 지금 교회 안 나온다고 가서 이런 저런 훈계하는 것 보단 설령 몇 주 몇 달 안 나오더라도 회개하고 나오면 하나님이 더욱 좋아하신단 말이네?
바로 그거제. 하나님은 나중에 반성하고 나온 자를 더욱 크게 쓸 수 있는 것이니 우린 그에게 이러쿵저러쿵 나무라지 말고 스스로 반성하고 나오길 기다리잔 이야기지.
한없이 기다리다가 삼천포로 빠지면?
그니까 간절하고 다급한 마음을 우린 기도로 바꾸어서 하나님께 영적인 변화나 성장은 맡기고 우린 인간적인 면을 있는 그대로 나누어서 그가 얼굴을 보일 때 따뜻하게 맞이하면 된다는 것이지.
그 말이 가장 영적인 가짐이고 또한 중요한 인간적인 면이라고 말하는 것이네. 와우! 아까 그 이야기는 성경에 나오는 말인감?
응, 정확히 몇 장 몇 절인지는 몰라도 읽다가 느낀 점이야. 하나님은 그런 비유를 통해 우리 인간들의 삶을 가장 영적인 삶으로 바꾸어 나가라고 깨달음을 준다는 것이제.
하여간, 전화하고 문자 보내고 나중에 나오면 아무 일 없는 듯 악수하면 되는 것이지?
근데 니 또래들은 점심을 같이 하든 아니면 좀 가봐야 할 거 같은 디... 크하하하.
가장 인간적인 게 가장 영적이다.... 근데 성경 어디에 나온 말씀이여?
궁금하면 읽어봐. 어딘가에 비유로 잘 나와 있단다.
글 : hyun.
'신앙관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뉘우침과 충격 (0) | 2015.07.29 |
---|---|
너와 나의 수다 속에서 e (0) | 2015.07.28 |
너와 나의 수다 속에서 4 (0) | 2015.07.28 |
너와 나의 수다 속에서 3 (0) | 2015.07.28 |
너와 나의 수다 속에서 2 (0) | 2015.07.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