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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잡문

희망 없는 사랑 1.

by 백대현 2015. 7. 18.

희망 없는 사랑 1.

 

 

 

마 전 내게,

사랑과 우정의 차이란 주제로 타자를 치게 해주었던 드라마가 막바지로 흐르는 것을 봤다.

연속으로 시청을 안 한 탓인지 지금도 정확한 흐름은 알 수 없다.

다만 한 여자를 사랑했지만 자신보다 더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에게, 아니 그녀가 연모(戀慕)하는 남자에게 그녀를 보내고, 그녀를 위한다(?)는 핑계로 자살 하려는 장면을 보면서 나는 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다.

 

위 드라마는, 상투적인 남녀 간의 삼각관계를 작가가 필기구를 교묘하게 이용해서 시청자의 심정을 울리는 전형적인 그런 드라마이지만 내가 지금 타자를 치려하는 것은, 그 드라마 등장인물 중 지금 죽음의 길로 가고 있는 남자조연의 입장을 내가 아는 이론을 이용해서 말하고자 하기 위함이다.

 

독일 작가 실러는, ‘희망 없는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만이 사랑에 대해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바꾸어서 말하면, 아마도 가질 수 없는 그런 절망스러운 사랑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사랑에 대해 얘기할 자격이 없다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선 지 인간은 소설이나 영화 아니면 드라마를 통해 그런 희망 없는 사랑을 간접 경험함으로서 어쩌면 사랑을 논할 자격을 얻는다고 말할 수 있겠다.

 

작가들은, 인간 스스로 만들어 놓은 금지된 사랑이나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 등을 다양하게 극본(劇本)화 하여 대리만족을 느끼려는 인간에게 전해주고, 전수 받은 인간은 인간 삶 중에 하나의 아이러니적인 그것을 꿈꾸어 보기도 한다. 즉, 희망이 없을 지라도 ‘한번쯤은 해보고 싶다’를 동경한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같다.

 

저 젊은 남자는 왜 차를 몰고 가다 핸들을 놓아서 심성이 고운 인간, 특히 여성의 눈에 눈물을 고이게 하는 것일까...

대부분의 여성들은 그의 그녀를 위하고 사랑하는 언행에 안타까움을 가지고 동정하겠지만 좀 심하게 말을 하자면, 그는 처음부터 잘못된 사랑. 즉 희망 없는 사랑을 알면서도 행한 우매(愚昧)함의 결과로 어쩌면 지금 핸들을 놓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타자를 치고 있는 나도 지금 죽어 가는 위 남자와 하등 다를 게 없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도 비슷한 부류일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랑 앞에선 그 누구도 자신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먼저 하고 싶다.

 

사랑은 언제나 인간의 삶과 동행(同行)하는 현재진행형이다.

사랑이 진행될 때에는 희망과 절망의 모든 속성이 담겨져 흘러간다. 그 진행상 어떤 요소가 먼저냐가 중요하지 그것을 우리가 선택하여 순서를 행할 순 없는 것이다.

 

...e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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