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 감정의 치유』를 읽고...
한 단락 아니 두어 페이지를 반복해서 읽었다. 여러 번 집중하다 보니 이젠 외울 정도다. 외운 것을 들고 중고등부 말씀 시간에 앞에 섰다.
어찌 시작할 까 잠시 고민하는 사이, 중1 영어시간으로 돌아가서 당시 외웠던 문장 하나를 칠판에 썼다.
그 문장은 ‘I am Tom’ 이다.
I는 인칭 대명사로 1인칭 단수 즉 나를 가리킨다. am은 be의 1인칭 단수로 ‘이다’ 또는 ‘존재하다’ 이니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나는 톰이다’ 란 뜻이다.
중1 정도만 되면 아는 문장을 구태여 설명한 것은 다음을 말하기 위함이다.
상한 감정의 치유를 읽다 보면 자아 개념(self-concept)이란 제목과 그 설명이 나온다. ‘self’ 는 단어대로 해석하면 자기나 자기 자신, 개성, 본성, 철학적 용어로 ‘자아’ 다. ‘concept’ 은 광고 용어로 널리 쓰이는데 어떤 테마나 기본 테마로 개념, 관념, 사상, 생각, 발상 등도 포함한다.
지은이는 나란 사람을 놓고 볼 때 나를 형성하는 네 가지를 설명한다.
하나는, 나안의 나로 나만의 고유의 자질 등을 일컫는 ‘내부의 세계’ 요
둘째는, 바깥에서 나를 보는 나 즉 유전적 출생이나 유아부터 현재까지 외부를 통해 이루어진 ‘외부의 세계’ 이며, 셋째는 사탄 그리고 네 번째는 하나님 말씀이다.
나는 칠판에 쓴 문장 중 I를 나안의 나로 대입했고 Tom의 자리에 나의 이름과 학생 자신의 이름을 대입시키며 외부에서 나를 보는 나로 설명했다.
그리고 하나님과 사탄은 비록 우리 눈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면서 지역적, 공간 및 시간적인 이유와 육신의 부모를 통해 우리가 세상에 나왔지만 나의 근원은 이미 하나님임을 반복해서 우선적으로 설명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창세기편에 기록되어 있듯 흙과 생기를 통해 우리를 창조하시고 첫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죄를 짓게 됨으로써 우린 사탄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다행이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보내시어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지만 그런 예수님조차 마태복음에서 보듯 사탄과 마귀의 시험을 당하게 된다. 다행히 예수님은 사탄의 역사를 뛰어 넘는 완벽한 존재이지만 우리 인간은 그들의 역사에서 시험 받고 수많은 고통과 역경에서 허우적거리게 된다.
바로 여기에서, 피할 수 없는 시험에서 이기고 지는 데에는 나 자신의 내, 외부의 세계 즉 내 자아가 크게 작용한다는 것을 말했다.
어릴 적부터 목회자의 집안이나 신앙적으로 강하게 무장된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사는 가정환경에서 자라온 사람과 신앙이 무시된 즉 하나님의 말씀을 뒤로 하며 내 생각과 내 자아로만 살았던 부모 밑에서 성장해온 사람은 나 자신의 내, 외부적인 작용으로 인해 세상을 사는 것이 갈라진다고 설명했고 그 차이가 나의 미래가 결정되는데 크게 작용한다는 것도 목소리를 높여 설명했다.
내 자신의 미래의 성공 여부와 신앙생활의 성공 열쇠는 거기에 있다고도 반복해서 말하며 지금의 중고등부 학생들은 비록 유아 및 초등부 시절을 지나 청소년기를 가는 이때도 내 자아의 형성 과정이라고 말했다.
지금 학생들은 이젠 세상적인 부모들의 지시에 거부할 권리가 있고 현재 학생으로서의 본분 즉 공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수 있으나 그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내 자아의 근본이요 올바른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내 자아의 근본과 기초가 되지 않으면 앞으로의 생에서 필연적으로 나올 수 있는 사탄 마귀의 역사를 이길 수 없다고도 단호히 말했다.
그 날의 요절 말씀은 마태복음 4장 4절 말씀이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살수 없다는 것을 나는 세상을 비유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상한 감정의 치유에서 읽고 느꼈던 것을 혼합하여 말씀을 이어갔다.
자. 이젠 학생에서 지금의 나 같은 성인으로 바꾸어서 말해 보자.
이미 우리 나이는 옳든 그르든 어느 정도 자아가 형성된 상태다.
다행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자아가 형성되어 굳어진 상태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굳어진 내 자아가 하나님 앞으로 가는 데 있어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서 사탄의 역사와 내 안의 내, 외부적인 세계가 손을 잡았다고 보면 된다.
세상적인 논리와 타당성을 제시해서 내가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을 막는 사탄은 나의 지나온 세월 동안 내 안에 형성되어진 나를 통해 역사한다.
너무나 정교하고 날카롭게 진행되는 것이기에 내가 내 안에서 벌어지는 그런 일들을 무엇이 참인지 판단할 능력이 되지 못한다. 그것을 내 지식과 형편으로 판단하여 실행에 옮기면 사탄은 박수를 치는 것이고 하나님은 좀 더 지켜보신다 거나 우리가 눈치 챌 수 없는 것으로 역사하시며 우리를 참길로 안내 하신다.
바로 참길로 안내하는 중간에 목회자들이나 신앙의 선배는 잘못 길을 잡은 후배들의 내, 외부적인 세계를 인내와 이해로 변화시켜 줄 의무와 책임이 생긴다.
이 책은 너무나 진솔하게 기술되어 있어서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대충 읽으면 가슴에 남지 않는다. 그것은 사탄의 좋아하는 일이다.
이 책은 목회자나 일반인들을 고루 등장시키면서 인간 각자의 입장을 대변하며 등장인물이 성장하며 가슴에 맺혀있던 하나님 앞에 가는 것을 막고 있던 것을 부숴가면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내 안에 이미 형성되어 있던 나안의 나와 타인이 나를 대하면서 내가 형성된 내 자아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사탄의 역사는 이길 수 없으므로 이미 하나님을 영접한 자들의 책임을 여러 번 강조했다.
무턱 대고 교회에 나와라 예배 잘 드리고 헌금을 많이 하고 봉사와 교제에 나서라는 일방적인 강요나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에 대한 문제와 그 문제보다 앞서야 할 내용과 방향을 정확히 가리키고 있다.
나는 이 글을 읽는 모든 신앙인에게 감히 말하고 싶은 게 있다.
지금의 교회는 네 가지로 자아가 형성된 ‘나’ 들이 함께 하는 건물이다. 어떤 자아로 형성된 존재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앞에 앉은 성도에게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가지고 자랑한다거나 비판하고 정죄할 수 없다.
하나님조차 인내하는 우리 인간의 각자의 역사를 내가 목사라고 전도사라고 장로라고 권사라고 집사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단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자리에서 그 자리를 하나님 영광을 위해 일하고 다른 위치에서 열심히 뛰는 타 성도들과 합심을 이루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아무리 내 자아로 준비하고 계획하는 교회의 모든 일이 옳다하여도 내 주위의 성도를 낙담하게 한다거나 실족시키는 것은 안하는 것만 못하다.
그렇다고 하지 말란 말이 아니다. 하되 더디더라도 함께 해야 한다는 말이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네 가지로 형성된 이미 비뚤어져 있는 내 자아는 하나님만이 치유해 주실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또한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듯,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 사랑을 실천해 나가는 사람들에게 먼저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 지은이가 정의한 자아 개념이란, ‘자신에 관해 세워 놓은 스스로의 느낌과 생각의 체계’ - 안에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을 지금부터라도 꼭 새겨 나가야 할 것이다.
나는 그것이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부족한 우리끼리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는 즉 사랑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바라고 계신다고 감히 단언한다.
글 : 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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