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험한 사고
오랜만에 후배가 왔다.
“선배, 참 어이가 없어요.”
“왜에? 뭔 일이야?”
항상 쾌활했던 후배의 침울한 얼굴을 보는 순간 긴장했다.
“형수, 아니 이젠 아니지. 아니? 아직 도장을 찍지 않았으니 형수는 형수네!”
“니, 뭔 말을 하려고 그러냐?”
후배는 가슴도 답답해 보였다.
“어머니가 혈액암이래요.”
엉뚱한 놈이라는 생각했다.
형수 이야기를 하던 중에 갑자기 어머니가 암이라니…….
“야! 암이라니? 맨날 어머니 건강하다고 자랑 했었잖아?”
놀란 토끼의 눈으로 후배를 다그쳤다.
“마자요. 근데요. 형수가 집 나가고, 조카 둘에다 열 대명 일꾼들 밥해대고 빨래 해대구. 너무 무리 하셨나봐요.”
“그래도 그렇지. 갑자기. 의사가 확실히 암이라고?”
“예, 확실한 거 같아요.”
후배는 몇 달 전 통화하면서 본 적도 없는 형수와 부모님 이야기를 했다. 후배의 형과 형수는 12살 차이로 보통 부부보다 나이 차가 나는 편이었다. 후배가 나보다 한 살 어리고 형이 후배보다 다섯 살 위니 후배의 형수는 서른셋이다. 또한 부모님 안부를 묻는 내게, “괜찮아요. 엄마는 정정해요. 아버지는 오늘도 저한테 전화해서 호통 치시는 거 보니 건강하시구요.”라고 할 정도로 부모님의 건강을 자랑했었다.
불과 얼마 전 자신했던 후배가 어머니의 암 소식을 전한 것이다.
“18! 참내 어이가 없네요. 갓난애가 둘이나 되는 사람이 그리할 수 있나요? 박사 선배님? 한마디만 해보시죠? 뭔 문제인가요? 네에?”
“너는 왜 어려운 문제를 내고 그러냐?”
사실 듣는 나는 답답했다. 하지만 어쩌랴. 일은 벌어진 상태고 결과가 나와 있으니 객관적으로 말해 줘야 했다. 오히려 후배의 부모님이 더 걱정됐다.
“얘기 들어보니, 형님한텐 미안한 얘기지만 쉽게 돌아올 거 같지 않다. 그나저나 어머님, 아버님이 힘드시겠다. Z야, 6개월 전 어느 날,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었다. 용돈 좀 더 보내라구? 그래서 내가 그랬지 ‘아니, 보낸 지 삼일도 안됐는데 또 보내라구여?’ 하면서 신경질 부렸어. 근데 그게 우리 엄마의 마지막 말씀이었다. 너무 웃기지? 네 부모님도 마찬가지여. 노인네들 내일 일을 알 수 없다는 말이야. 아니지 우리네 부모만이 아니라 인간은 다 마찬가지지.”
“인간의 생명이야 그럴 수 있다지만, 저는 형수가 너무 밉다는 거예요. 지 때문에 어머니가 쓰러지셨고 자기가 배 아파난 조카아이들 돌볼 사람이 없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애 엄마가 직접 가서 자초지종을 얘기했거든요. 근데…….”
“근데 뭘? 야, 너 웃긴다!! 이미 떠난 배 돛을 어떻게 돌려 보려고? 애들 얘기 듣고 돌아올 사람이면 첨부터 그런 결심 안 해야 미련 버려라!”
“아니 긍께 말이 되냐구요?? 지가 배 아파서 난 애들이 가엾지가 않냐구요? 시부모님이나 남편은 그렇다 쳐도 말이예요!”
“마! 아직도 그런 구태의연한 생각을 하냐?? 너 옛말 틀린 거 하나두 없다는 거 몰라? 여자가 변하면 더 무섭다는 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요?”
“바보 같은 놈아, 니도 남의 얘기로만 알았지? 인간은 다 거기서 거기 인거야. 하여간 어머니 간호와 조카들 땜에 니하구 와이프 힘들겠다.”
나는 후배의 형수가 집을 나간 이유를 자세히 쓰지 않았다. 왜냐면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일어난 일을 어느 정도 짐작했으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먼 별나라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겠지만 나 자신은 물론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고 들을 수도 있다.
나는 어쩌면 위험한(?) 사고방식을 가진 자다. 인간은 남자든 여자든 정상적인 길에서 벗어 날 수 있다. 그 이유는 사랑이라는 것이 결부되면 도덕과 윤리 등 인간의 보편적인 사고를 넘어서는 불가사의한 감정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당사자의 입장을 모르면 그 행보를 함부로 왈가왈부할 수 없다.
백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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